매일신문

위기의 재래시장 이대로 둘 것인가-(1)재래시장의 위기

대형소매점과 편의점 등이 도심에 난립하면서 재래시장이 고사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마다 재래시장 발전에 대한 각종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상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나오는 장밋빛 공약 아니겠느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재래시장에 대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에 대해 입을 모으고 있다.

역내 재래시장의 현황을 점검하고 재래시장의 발전 방안을 모색해본다.

◇무너지는 재래시장

오후 세시. 한참 손님들로 붐빌 시간이지만 교동시장엔 상인들만 가게를 지킬 뿐 쇼핑객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재고 정리만 되면 장사 접고 손자들 뒷바라지 해주고 싶은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정도로 장사가 안됩니다.

그래도 30여년간 이 장사로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는데…". 이명자(62.여)씨는 교동시장의 경기를 한마디로 '바닥마저 지나 늪을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배금자(58.여)씨도 "요즘은 돈 구경 못하고 집에 가는 날도 수두룩 하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요즘 교동시장을 '울고 있다'고 전했다.

상인들은 그 원인으로 오랜 경기 침체와 외지 백화점 진출 등의 외부적 요인과 함께 시장의 낙후된 시설을 상권 약화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지은지 50년이 넘는 건물은 한사람이 다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좁은데다 휴게 시설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화장실 이용에도 사용료 100원을 내야 해, 상인들은 "우리도 인근 백화점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쇼핑객들은 과연 이 시장을 찾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서문시장은 장사가 '잘 되는 곳'과 '안되는 곳'으로 뚜렷이 나뉘어져, 빈 점포가 느는 지구도 있다.

서문시장 한 상인은 "예전같으면 서문시장 점포 하나 얻으려면 5년씩 기다려야 했는데, 요즘엔 빈 점포들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동네 재래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동네 변두리 시장의 경우 상권의 70~80%는 이미 몰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마트 만촌점과 직선거리로 불과 250여m 떨어진 동구시장(대구 동구 효목동)은 이마트 개점 이후 매출이 60% 이상 감소했다.

동구시장은 동네 시장 가운데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알려졌지만 어둑어둑해지면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다.

동구시장 번영회 이규옥 회장은 "장사가 안돼 점포를 팔려고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인들도 많다"고 전했다.

동대구 시장(대구 북구 대현동)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시장 바깥쪽엔 유동인구가 있는 편이지만 시장 건물 안으로 한발짝만 들어서면 점포의 80% 이상은 비어 있는 것.

30년째 옷장사를 하고 있는 김영숙(60.여)씨는 "나이 많은 가게 주인들이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는거지. 전기세 줄인다고 오후나 돼야 나오는 사람도 많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에 따라 시장 건물 안에 있던 상인들도 시장 건물 밖으로 나와 노점에서 장사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상인들간에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칠성시장은 최근 노점상과 상인들간에 갈등이 깊어져, 상인들은 "모두 노점으로 나가 장사를 하자"고 나서고 있어 큰 혼란이 예상된다.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시장 밖에 노점상이 늘어나면서 시장 안에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 동대구시장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는 이계순(63.여)씨도 "장사가 안되니까 상인들이 자꾸 노점으로 나가, 시장 안은 텅텅 비게 됐다"고 말했다.

서문시장은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갈등이 숙진 상태이다.

노점상인들끼리 연합회를 결성, 시장 번영회와 꾸준히 협의해나가면서 시장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것. 노점상인연합회 최왕수 회장은 "이제 재래시장이 위기에 처한 만큼 갈등보다는 시장 상인들과 노점상인들이 협력해 시장을 발전시켜나가는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재래시장을 고사 직전까지 몰고간 직접적인 원인으로 상인들은 대형소매점들의 도심 난립을 꼽고 있다.

현재 대구에는 대구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3천㎡ 이상의 대형소매점이 9개나 위치하고 있다.

팔달신시장 이정오 번영회장은 "대형 소매점 하나가 생겨나면 곧바로 매출 하락으로 이어져, 인근 시장과 영세상인들은 고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20년 넘게 동대구 시장에서 닭장사를 하고 있는 김 모씨는 "대형 소매점이 들어선 후 매출이 반 넘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동구시장 이종태씨는 "대형소매점이 들어서면 반경 3, 4㎞ 내의 상권은 모두 죽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네 재래시장 외에도 서문시장, 팔달신시장, 칠성시장 등 대형 재래시장까지도 대형소매점으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

칠성시장 채소상회 김동목씨는 "대형소매점이 '가격파괴, 최저가격'을 내세우면서 젊은 소비자들 대부분을 대형소매점에 빼앗겼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최근 24시간 영업을 시작하는 대형소매점들이 늘고 있어 골목상권 등 영세상인들의 시름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상인들은 대형소매점의 입지를 선정할 때 인근 재래시장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몇 년간의 불황을 겪으면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재래시장의 부흥을 계획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시장 리모델링과 환경개선 사업. 최근 중소기업청은 전국 202개 재래시장의 환경개선 사업에 총 1천14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이가운데 대구지역은 14개 재래시장에 72억3천만원, 경북지역은 20개 재래시장에 108억9천만원이 지원된다.

하지만 이들 시장이 재건축 및 리모델링을 추진할 때 내부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시장의 건물주 및 지주, 임대상인들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된 개발이 힘들다.

교동시장 1층 홍순억 번영회장은 "교동시장 백화부 1,2층 전체가 약 700평인데 지분을 가진 지주가 74명"이라며 "노후된 건물을 재건축하고 싶어도 사실상 지주들을 모두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또 재래시장을 개발할 때 드는 비용을 둘러싼 갈등도 만만찮다.

현재 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 분담비율은 국비 50%, 지방비 30%, 민간부담 20%이므로 시장측이 20%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쪽이 자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둘러싸고 건물주와 상인들간의 갈등이 발생, 개발이 늦어지기도 한다.

팔달신시장은 환경개선사업 초반에는 비용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지만 최근 아케이드 설치사업에 건물주와 상인이 각각 50%씩 부담하기로 해 다행히 사업이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

노후화된 재래시장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재래시장 특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문시장 1지구 박노철씨는 "시장들이 도매기능은 상당부분 잃어가고 있는 만큼 특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4지구 정진식씨도 "자체 공장을 갖고 도매와 소매업을 겸하면서 경쟁력을 지켜나가는 4지구 한복주단 가게들처럼 재래시장만이 가질 수 있는 가격 경쟁력, 재래시장만의 분위기 등을 살린다면 재래시장의 앞날도 어둡지 만은 않다"고 말했다.

대구시 상인연합회 전무일 회장은 "재래시장이 있어야 지역 경제도 돌아가고 서민들도 살 수 있다"면서 재래시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더 이상 대형유통업체들이 도심 한가운데 난립하는 것을 막고 시장 상인들도 서비스를 개선해나갈 때 재래시장도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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