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점> 팔루자 사태와 물거품된 이라크 점령노력

미국이 민간인의 대량살상을 불러온 팔루자

사태를 자초함으로써 이라크에서 지난 1년간 쌓아온 공든 탑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있다.

지난 5일부터 팔루자에 대한 미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9일까지 450여명의 이라크

인이 떼죽음을 당한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팔루자 사태로 올 6월 말로

예정된 주권이양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팔루자 작전은 미국의 최대 실수=이슬람권에서 공휴일인 주바(금요) 기도회가

열린 9일 이라크 전역에서는 통곡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날 기도회에 참가한 이라크인들은 팔루자 무슬림 형제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미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팔루자에서 가장 가까운 바그다드 지역의

기도회를 참관한 한 외국인은 "팔루자 상황을 전하는 종교지도자의 설교를 들으니

나도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체인구(2천500만명)의 80%를 차지하는 아랍계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

들은 팔루자 상황을 시시각각 전하는 위성방송인 알-자지라 TV에 눈을 고정한 채 반

미 결의를 다지고 있다.

바그다드 함락 1주년이 되는 9일 하루 동안 바그다드에서만 10여차례의 큰 폭발

음이 들리는 등 미군 주도의 연합군 시설에 대한 공격이 더욱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

였다.

이라크인들은 미군이 팔루자에서 감행하는 군사작전이 도대체 무슨 명분을 갖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점령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

는 것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이라크인들은 팔루자 사태는 지

난 91년 걸프전 후 봉기한 시아파를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걸프전 직후 나자프 등에서 발생한 시아파의 봉기를 무력 진압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한 것을 지난해 12월 체포한 후세인 전대통령의 범죄 혐의로 올려

놓고 있다. 살육(殺戮)이 수반되는 이번 싸움은 민간인들을 상대로 군인들이 벌이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전쟁범죄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예정된 주권이양 힘들 전망=미국은 올 6월 말 주권을 이라크에 이양하는 일정

을 준수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미국의 그같은 구상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팔루자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주권을 이양할 주체로 검토중인 확대된 과도

통치위원회(IGC)에 대한 반발 심리가 미군 점령에 대한 반대투쟁 이상의 강도로 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통치위는 수많은 사람이 미군의 손에 학살을 당하는데도 이를 비판하는 목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며 그런 통치기구를 누가 인정하겠는가라고 이라크 사람

들은 말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의 치안상태로 주권이양이 이뤄질 경우 이라크는 그야말로 내전상태

로 휘몰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아 딜레마에 빠진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이라크 과도통치 정부의 행정기관들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약탈에 대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군의 급작스런 탈출이 이뤄져 권력공백이 생길 경우 지난해

전후 상황과 같은 약탈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이라크의 치안을 통제하려면 최소한 50만명의

병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추산하고 있지만 미국에 그럴 여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는 지적이다.

현지의 소식통은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내세워 전쟁에선 이겼지만 전쟁후

에는 지는 싸움을 자초했다"며 "미국은 팔루자 사태의 여파로 탈출전략을 짜야하는

급박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결책은 없나=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는 미군이 폭력적인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하고 시아파와 수니파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시켜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후에 미국이 아닌 이라크를 진정으로 대표할만한 새 지도자들를 뽑고, 이라

크인들을 우위에 놓는 정치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등 주권이양 일정을 다시 짜야한다

는 의견이 나온다.

또 지금까지 벌인 무모한 군사작전으로 팔루자에서만 400여명의 민간인 사망자

를 초래하는 군사작전을 벌인 책임자에 대한 처벌 약속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이

라크 저항세력 쪽의 주장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요구들을 미국쪽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다, 설사 타협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팔루자 사태를 계기로 고조한 반미감정이 너무나 깊은 상처로 남

아 이라크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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