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화병이 아닌 우리 사회를 화합시키는 '열정'으로 만드는 일은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화'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밝힌 '한국인의 화'(휴머니스트)를 최근 펴낸 김열규(72) 계명대 석좌교수.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그는 화를 잘 '처리'하면 자신을 성숙시키고 타인을 용서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화병(火病)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화병 또는 화증은 지난 1996년 국제 정신의학계에서 가장 한국적인 정신신경장애증상으로 정식 등록됐다"며 "'화병(Hwabyung)'이 김치처럼 한국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글로벌 언어가 된 셈"이라고 밝혔다.
화병을 한국인의 마음 속에 기생하는 악성 종양이라고 진단한 그는 이 책에서 '왜 한국의 노여움은 불의 뜻을 갖고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화의 근원과 실체, 전통 문화 속에 나타나는 갖가지 화의 모습, 이를 다스리는 방안 등을 두루 살폈다.
"화는 화(火)고 화(禍)이지요. 마음의 화염, 화근이며 재화(災禍)라는 뜻입니다.
먼저 내 마음에 불길이 지펴지고, 그런 다음 나와 남의 앙화(殃禍)가 되는 게 다름 아닌 '화난다'고 할 때의 바로 그 화입니다.
화가 잘 소화되면 화는 화근을 벗어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불'의 기운이 강한 화인(火人)이라고 밝힌 김 교수는 "그러면서 온돌을 이용하고 서로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온기의 민족이기도 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노여움의 공격성과 파괴성에 주목하고 두려워했다면서 선덕여왕을 사모하다 스스로 앙심을 참지 못해 불귀신이 된 지귀설화를 화와 관련한 가장 원천적인 이야기로 꼽았다.
"화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망치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화를 두려워한 만큼 이를 잘 다스리려고 했어요. '재앙-이로움'이라는 불의 양면성은 '노여움-열정'이라는 화의 그것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가 '화 잘 내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파악했다.
공정한 경쟁이나 여유보다는 적대적인 대립과 조급증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는 한국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인간관계의 고민이죠. 하지만 화라고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예요. 잘못에 대한 질책이나 공분, 의분처럼 드러내어서 마땅한 화가 있는가 하면 신경질, 토라짐 등 삭힐수록 좋은 화가 있습니다".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공개강좌 '김열규의 한국문화읽기'를 진행하고 있는 김 교수는 30, 40대 여성들의 증상이었던 화병이 요즘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신을 잘 다스리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자연과 친구가 되는 것이 화를 잘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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