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대구.경북에서 26대 1로 압승했다.
무소속에 한 석을 내준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석권이다.
4년전 16대 총선에서 27대 0을 기록한 데 이어 총선 2연패다.
97년 대통령선거와 98년의 지방선거 그리고 2002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까지 포함하면 6번째 한나라당의 싹쓸이에 가까운 석권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우리는 한나라당 후보들과 싸운 것이 아니라 '1번교' 내지 '한나라당교'라는 종교에 가까운 신앙심을 상대로 싸운 것 같다"고 할 정도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탄핵역풍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던 지역 표심이 '박근혜(朴槿惠) 바람' 즉 '박풍(朴風)'과 노인 폄하 발언으로 촉발된 '노풍(老風)'으로 재결집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단순히 박풍과 노풍 그리고 반 노무현 정서만으로 대구.경북의 표심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뭔가 부족하다.
일부 인사들은 1년 반 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그 연장선 상에서 투표를 한 것 같다고도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총선을 '준 대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뿌리 깊은 반 DJ정서와도 맥을 같이 하는 '반 노무현 정서' 탓이라는 설명이다.
또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를 대구.경북이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박풍과 노풍의 진원지였음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야당도시의 '자존심'을 이어가게 됐다고 주장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라는 선비정신으로 미화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못 먹어도 고'라는 돌쇠 정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열린우리당의 의회 독재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른바 한나라당이 주장한 '거여견제론'이다.
탄핵풍 이후 신문과 방송 등 각종 언론이 일제히 200석에 가까운 전망을 내놓은 것도 한나라당에 대한 표쏠림 현상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지역내 다양한 정당의 의석 분포가 바람직하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1당의 석권이 이뤄진 것은 견제 심리 외에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보수성의 본향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의 정서상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일방적인 득세에 불안을 느낀 반발 심리가 작용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지나친 진보성향으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불거진 외교.안보상 불안심리가 표심으로 연결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비례대표로 17대 국회 등원이 예고돼 있는 박찬석(朴贊石) 전 경북대 총장은 "대구.경북에만 노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서울과 광주에도 노인들이 있고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대구.경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만큼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풍(老風)과 반 노무현 정서가 원인이 아니라 바로 지역주의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대구.경북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박풍'은 YS정부 이후 침체 일로를 걸어온 지역 경제 현실에 대한 반발과 그에 따른 정부 여당에 대한 외면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폭발적으로 발휘한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즉 정권을 내주고 10여년째 바닥을 기고 있는 지역경제 현실에 대한 지역민의 반발과 유력한 대선 후보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식이 복합돼 그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이 역시 변형된 지역주의로 볼 수도 있다.
결국 한나라당의 대구.경북 석권에는 그 저변에 '지역주의'가 엄존하고 있다고 밖에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인물이나 공약 그리고 지역 밀착도 등 어떤 항목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할 정도는 아닌데도 지역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이성적인 측면보다는 감성적인 데 그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다.
'백약(百藥)이 무효'라는 푸념이 터져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결국 DJ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주류 출신이 아닌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불안'의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지역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박풍과 노풍으로 거듭 자극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태생적 내지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박풍과 노풍이 불기 이전부터, 정당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을 잠시 앞서나갈 때도 대구.경북 표심은 일찌감치 열린우리당의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차떼기 정당' 등 부정적 이미지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나타내기를 주저하고 있던 지역 유권자에게 박풍과 노풍이 표심을 확 돌아버리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지역민들의 지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이번 표심은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는 엄중하고도 비판적인 지지라는 것이다.
여당 후보를 전원 배제하고 한나라당에 대해 몰표를 준 만큼 한나라당 역시 경제 회생과 침체의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이 과거보다 오른 것은 언제까지라도 한나라당에 대한 지역민의 마음이 일편단심(一片丹心)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대구와 경북은 22%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0패로 좌절감에 빠진 가운데서도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희망의 불씨라고 여기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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