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이제 제자리를 찾자

"탄핵정국만 오지 않았더라면 이번 총선에서 지역에선 절묘한 정치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아쉽습니다.

그게 우리 지역의 한계가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의 운명이라고나 할까…".

얼마전 한 지역 대학교수가 한 말이다.

탄핵정국 이전에만 해도 지역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보였던 몇몇 여당 인사들이 '바람'에 모조리 추풍낙엽이 돼버렸다.

탄핵정국과 함께 몰아닥친 '탄풍(彈風)'에 이어 '박풍(朴風)', '노풍(老風)' 등으로 불리는 바람이 잇따라 지역을 강타하면서 지역 정치판도를 몇차례 바꿔버렸다.

서울과 호남에서의 탄핵반대에 대한 지역의 역풍도 거세졌다.

야당 독식으로 인해 정부의 지역 홀대 등 손해를 볼지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굳은 심정으로 한나라당 일색의 지도를 만들고 말았다.

"각종 바람이라는 귀신과 되살아난 지역주의 망령에 정책과 인물대결은 오간 데 없는 선거였다"는 것이 한 선거관계자의 평가다.

일각에서는 신 지역주의의 부활이라고도 얘기한다.

인터넷 등의 토론마당에서도 이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단최면에 걸린 우리 사회

과연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해석이 분분하지만 지역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실정과 잦은 설화(舌禍)로 인한 국정혼란 등이 열린우리당의 지역 착근(着根)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있다.

또 DJ정부의 연장선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감을 보이는 비이성적인 사고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것들이 탄핵정국을 맞아 잠복하고 있다가 가림막을 걷고 선거 막판에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집단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동 한나라, 서 열린우리당'으로 전국 지도를 거의 반으로 갈라놓았다.

지난 16대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왜 이렇게 우리 사회가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이성(理性)은 안된다고 판단하면서 막상 결정적인 때는 감성(感性)을 좇는, 아직도 그러한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뒤돌아보아야 하겠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이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우리 정치의 큰 폐해로 치부되던 '3김 정치'라는 보스정치의 사슬에서 일거에 벗어나게 해 주었다.

거기다 자생정당인 민노당의 의회 진출은 개혁과 진보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민노당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번 선거에서 보여주었듯이 정책 정당으로서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도 많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 준 것은 한나라당이 이뻐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정쟁만 일삼던 구태를 빨리 벗어던지고 행정부의 견제 세력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역정당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전국 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총선 상처' 보듬어 안아야

노무현 정부와 이제 제1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대구.경북을 '한국의 하와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한다.

또다시 '영남공화국'과 '호남공화국'으로 치부, 국론을 분열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더욱 곤란할 것이다.

개표종료 무렵 청와대 관계자는 "영남에서 의석은 많이 확보하지는 못했어도 지역구도는 많이 와해됐다"고 이번 총선결과를 평가하고 "노 대통령은 다음 총선에서는 지역구도가 완전하게 깨질 수 있도록 영남지역에 도움이 되는 대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향적 견해를 밝혀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선거는 끝났다.

이젠 모두 그간의 갈등과 반목은 떨쳐버리고 제자리를 찾아야 할 때다.

특히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사회전반의 진보와 보수의 이념 및 세대간 갈등, 신 지역주의 부활조짐, 감성정치에 치우친 포퓰리즘 현상 등도 빨리 치유해야 한다.

모두 새로 출발하게 될 17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17대 국회는 각 정당이 선거전에서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국민소환제 실시' 등 대국민 서약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때에만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기대해본다.

홍석봉(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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