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기 이야기-(8)공연장

노래방에서 에코 효과를 전혀 넣지 않고 노래를 불러보면 정말 삭막한 소리가 나옴을 알 수 있다.

반면 목욕탕 같은 곳에서는 소리가 풍부해져 실력이 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모두 잔향이 만들어낸 마술이다.

잔향 부족으로 사막에서처럼 메마른 소리를 내는 콘서트홀은 연주자들에게 지옥이다.

소리 좋은 콘서트홀을 설계하는 것은 신비의 명기를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

미국의 피셔리 홀은 음향상태가 좋지 않아 30여년 동안 음향 개보수 작업을 하다가 실패해 결국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었다.

잔향 시간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침실은 소리 흡수가 많아 진향 시간이 0.4초 정도에 불과하지만 딱딱한 벽면으로 이루어진 성당은 잔향시간이 7초를 넘기는 곳도 있다.

종교음악의 최적 잔향시간은 3초, 낭만파 음악은 2.2초,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음악은 1.6초, 피아노 음악은 1.2초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빈 음악협회 홀은 잔향 시간이 2~2.3초이고 세계적으로 평판이 높은 보스톤 심포니홀과 카네기홀의 잔향 시간은 1.6초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모양새가 아름답지만 음향은 영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악평이 나 있다.

오페라극장의 적정 잔향 시간은 만석시 1.2~1.4초인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잔향 시간은 공석 때에도 1.0초에 불과하다.

관객도 소리를 빨아들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공연 때의 잔향 시간은 이보다 더 짧다.

이 때문에 호주 정부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대대적인 음향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막의 울림'으로 악명 높았던 세종문화회관은 잔향 시간을 늘리기 위해 전기 장치라는 편법을 동원했다.

최근 네덜란드 SIAP사의 기술진에 의뢰해 음향 보정장치를 시공했는데 무대에 설치된 8개의 마이크에서 채집된 음향을 에코로 만들어 250개 스피커로 흘리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잔향감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소리의 순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있다.

대구지역 공연장의 소리는 어떨까.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잔향 시간은 측정 결과 1.2~1.6초로 나타났다.

오페라극장의 적정 잔향을 충족시키는 수치. 그러나 실제 연주자들이 체감하는 소리의 질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만난 정은숙 국립오페라단장은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해 보았는데 잔향이 부족해 소리가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대구문예회관은 상태가 심각하다.

KBS교향악단 등에서 음반 레코딩 일을 했던 한인배씨는 대구문예회관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대구문예회관 대극장의 소리는 과도한 흡음 효과 때문에 잔향이 거의 없는 '데드룸 사운드'(잔향시간이 0.8초 이하 스튜디오 음향을 일컫는 말)로 느껴졌으며 오케스트라 연주시 바이올린 소리보다 금관악기 소리가 전면에 위치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확한 측정은 해봐야 알겠지만 대구문예회관 대극장의 잔향 시간은 1.0초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구문예회관의 사정이 이 정도이니 여타 공연장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좋은 홀에서 진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대구의 공연장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콘서트홀도 악기이기 때문이다.

콘서트홀은 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 내진 못하지만, 악기의 공명통처럼 음악을 음악답게 만든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