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경주 황복사지

경주시 구황동 황복사지(皇福寺址). 경주 남산과 명활산성 사이 낭산에 있는 절터다.

이 곳엔 삼층 석탑 하나가 남아 절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 탑은 높이 7.3m, 통일 신라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37호이다.

그러나 국보급 탑이 있는 절터지만 발굴조차 시도되지 않고 있다.

그냥 방치돼 있는 것이다.

이 탑이 있는 자리는 오래 전부터 황복사 터라는 전설이 전해왔다.

1937년경에 낭산 동쪽 기슭에서 발견된 재명와당편(在銘瓦當片) 뒷면에 '황복사'라 음각되어 있어 비록 발견 지점이 확실하지 않으나, 막연했던 황복사지설에 유력한 증거를 제공했다.

황복사의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더구나 현존 유물인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이후의 것이어서 더욱 막연하다.

다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머리를 깎은 낙발처(落髮處)라는 기록이 황복사의 창건 연대를 밝히는 열쇠다.

의상은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황복사에서 출가했다.

따라서 황복사는 진덕여왕 재위 당시 이미 건립돼 있던 절로 추정된다.

황복(皇福)이라는 절 이름으로 미루어 황복사는 황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원찰(願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문왕도 이 사찰에서 화장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의상이 이 곳에서 출가했다고 하나 그가 여기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삼국유사는 의상이 황복사에서 탑을 오르면서 층계를 밟지않고 언제나 허공을 밟고 올라 돌층계를 놓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의상은 문무왕 1년(661년) 당나라로 건너가 중국 화엄종의 3조인 현수법장(賢首法藏)과 함께 종남산(從南山) 지상사(至相寺)의 지엄화상(智儼和尙)을 사사(師事)하였다.

의상은 귀국 6년 만에 왕명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학을 고국에 심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문하에서 수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고, 전국 곳곳에 절을 지어 화엄종을 전파했다.

의상의 황복사 탑돌이에 얽힌 일화는 그가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머물던 시절인 것으로 추정된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분황사에 머문 것처럼 의상도 황복사에서 웅대한 꿈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의 사리함에서 발견된 명문에 따르면 탑은 효소왕 1년(692년)에 건립됐다.

1943년 이 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옥개석에서 순금 여래입상과 여래좌상, 은과 동으로 만든 고배(高杯), 무수한 유리구슬, 팔찌. 금실 등이 커다란 청동 사리함 속에서 발견되었다.

이 명문은 이 탑의 연기(緣起)뿐 아니라 유물의 성격까지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사리함과 불상 등 탑에서 발견된 유물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 건축양식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결구하였던 초기 석탑과는 달리 단일석으로 쌓아올렸으며, 기단부의 탱주(撑柱)도 세 개에서 두 개로 줄어들었다.

규모도 감은사지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나,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보다 커졌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주변에는 십이지상(十二支像)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곳을 찾아도 십이지상을 볼 수는 없다.

도굴을 우려한 문화재 당국이 탑 동쪽에 묻어두었기 때문이다.

십이지상 중 3상은 사라지고 9상만 남아 있는데 돋을 새김이 신라 십이지상 중 가장 두드러지고 세련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십이지상의 배치가 불합리하고 돌의 생김새가 특이한 점으로 미루어 이 십이지상은 근처 어느 왕릉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탑의 동과 서쪽에는 머리가 잘린 귀부(龜趺 :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3좌가 있는데, 이는 탑비(塔碑) 또는 사찰의 창건기록을 적은 가람비(伽藍碑)의 귀부로 추정된다.

이 근처에서 비편(碑片)들이 발견되었으나 명문 등은 남아 있지 않다.

이밖에도 당간지주(幢竿支柱) 일부와 석정(石井) 등이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심영섭 학예연구실장은 "천년 애환을 간직해온 국보급 탑이 있는 절터 주변이 농토로 잠식되면서 훼손이 심각하나 발굴.복원이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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