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술 깨니 정신병원"...30대 취객 '기막힌'사연

"술 취한 사람을 정신 질환자로 취급하고 병원에 2주일 이상이나 가둬도 되는 겁니까".

지난 2일 가족을 만나러 대구에 온 김모(39.서울)씨는 대낮에 술에 취해 수성구 시지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 서 잠이 들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대구시내 A병원 정신과 입원실에 누워 있었던 것.

정신을 차린 김씨는 병원측에 여러 차례 퇴원을 요구했지만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은데다 최근 대구의 다른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퇴원을 거부당했다. 김씨는 21일 아침, 가까스로 연락이 된 선배가 신원보증을 해 입원 19일 만에 겨우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김씨는 경찰차에 실려 병원으로 간 기억은 나지만 퇴원하기까지의 과정이 도무지 석연치 않다고 했다. 취재진의 확인결과 당시 경찰은 김씨가 '정신질환 및 행려'라며 병원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를 병원으로 보낸 경찰관은 "발견 당시 김씨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 없고, 인사불성이어서 2시간 이상 파출소에 둘 수가 없었다"며 "최근 대구의 한 병원 정신과에서 받은 치료약이 김씨의 옷에서 발견돼 A병원에 인계했다"고 말했다. 또 A병원 주치의는 "김씨 자신이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을 거부했고, 알코올 치료 병력이 있어 2주 가량의 치료가 불가피했다"면서 "본인이 내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는 병원.경찰측이 행려환자 처리절차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자신을 가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행려환자는 입원후 72시간내에 본인이 원할 경우 퇴원시키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

김씨는 "가족 문제와 관련, 괴로운 일이 있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알코올 치료약을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세한 신원조사도 없이 (나를) 바로 병원에 보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행려환자를 입원치료하면 입원일수만큼 건강보험공단에서 치료비를 받는 점을 이용해 병원측이 계속 붙잡아둔 것 아니냐"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21일 국가인권위에 제소했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한편 대구시 보건당국에 따르면 대구에서 김씨처럼 행려환자로 처리돼 병원으로 보내진 사람은 지난 1~3월까지 모두 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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