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15 대구경북 표심 과연 지역주의였나-(하)두가지 시각②

싹쓸이는 망국적 투표행태

이번 17대 총선은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을 가늠케 하는 좋은 계기였다.

우리나라에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짧은 역사에 비해 세계가 괄목할 정도로 성숙한 선거문화의 정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우리 지역민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투표참여 동기와 후보선택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드러난 민심은 정치후진성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유권자 대다수가 이른바 '3김정치'의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기초한 투표형태를 과감히 청산하였다.

그러나 우리 지역민은 '우리가 남이가'를 되새기며 싹쓸이를 선택하여 지역주의가 여전히 공고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선거결과에 대하여 우리 지역민 가운데 부끄러움을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득의만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은 심각한 문제이다.

왜 심각한 문제인가 하면, 우리 지역사회가 시대변화에 부응하여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끼리 뭉쳐서 지역경제를 살리면 그만인데 뭘 걱정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심지어 조선 중엽 이후 500여년간 우리 지역이 야당 신세를 면한 것은 지난 30여년에 불과하고 다시 최근 10여년 야당 더한다고 해서 뭐 대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퇴행적인 지역폐쇄성은 자급자족하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통할 수 있겠지만, 상호의존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네트워킹이 중시되는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백해무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네티즌 사이에는 우리 지역민을 폄하하는 글들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실정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대구.경북 주민은 추풍령을 넘을 때 비자를 발급 받게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뭐라 해도 괘념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우리 지역만 낙후되고 말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민은 이번 선거에서 인물 본위의 선택을 외면하고 소속 당만을 집착한 '묻지마' 식의 투표를 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역의 일꾼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많은 후보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아무튼 오래 전에 지역을 떠나 지역 문제를 잊고 살았던 기회주의적인 인물마저 우리 주민 대표로 내세운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할 것이다.

우리 지역민은 과거로부터 국난을 헤쳐온 올곧은 선비정신과 새로운 시대를 열어온 선구자적 기질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다행한 점은 우리 지역에서도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과거에 비해 약진한 선거결과이다.

다수의 보수가 소수의 진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상생의 정치야말로 우리 사회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첩경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구적 보수는 개혁적 보수로, 그리고 투쟁적 진보는 합리적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부터 이 일에 우리 지역이 앞장섬으로써 다른 지역의 일당일색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고 진정한 지역사랑의 자부심을 회복해가야 할 것이다.

김규원(경북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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