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남녀평등과 아름다운 세상

얼마 전 학생들을 데리고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의 일이다.

작년도에 갔을 때 서로 알게 된 필리핀인 대학교수 한 사람이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4시간 넘게 차를 몰고 왔다.

여자 두 명을 데리고 왔는데 한 명은 자기 아내(my wife)이고 다른 한 명은 친구(my friend)라고 소개하였다.

남녀 사이에 그것도 자기 부인 앞에서 친구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그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남녀사이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다소 고루한 고정관념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의식 속에는 은연중 남녀차별의 의미도 일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남녀간의 성(gender)을 구별하지 않는 경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고, 대학가에도 여학생 수가 늘어가면서 남녀학생의 역할과 지위가 바뀌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이성적이고 공격적 성향이 강한 반면에 여성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감성적이고 방어적 성향이 강하다고 인식되어 왔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요사이 여학생들이 장학생으로 되는 경우가 더 많고, 학생회장선거나 학생자치활동에 있어서도 여학생들이 더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상대적으로 남성의 지위와 역할이 약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를 두고 성의 역차별로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양성평등과 합리적 능력주의로 나아가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자 299명 중 여성이 39명으로 전체의 13%를 차지하여 16대의 5.9%에 비하여 크게 증가한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던 남녀차별의식과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을 없애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남자는 우위이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남녀간 성차별의식과 편견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실증주의 창시자인 콩트(Comte)는 "여성은 정신적 능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꾸준함이 요구되는 정신적 작업은 할 수 없다"고 하였고, 자유주의자인 루소(Rousseau)는 "여성은 예술을 사랑할 줄 모르며 예술에 대한 감상 능력도 재능도 없다"고 하였으며, 철학자 헤겔(Hegel)은 여성은 "보편성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 성향이나 의견에 좌우되기 때문에 여성이 정치를 하게 되면 국가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이념에 따라 여성은 사회진출이 극도로 제한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칠거지악(七去之惡)이나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제도와 같은 남존여비사상이 뿌리깊게 존재해 왔다.

그러나 남녀간에는 지능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유형별 능력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여성은 언어 능력에서 남성보다 높은 이해능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으며, 남성은 여성보다 우수한 수학적 능력과 공간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말을 잘하고 글을 빨리 읽을 수 있으며, 기억력이 높고 감정이 풍부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도 여성이 당의 대표나 대변인 또는 토론자 자격으로 나와 말을 잘 하는 것을 보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하여 자동차를 주차할 때 쩔쩔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화하는 방식에도 남녀의 차이가 있다.

남성은 대화를 통하여 결론을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여성은 대화 자체에 의미를 두고, 말을 통하여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한다.

보통 여성들이 수다를 떠는 것은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여권신장론자 내지 페미니스트(feminist)들에 의하면 남녀간의 여러 차이는 타고난 것이 아니고 다분히 환경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제2의 성'의 저자인 보부아르르(Beauvoir)는 "인간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남녀 양성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각각의 성의 특질을 가지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양성의 특질을 서로 인정하고 상호 협력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밝고 아름다운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조(영진전문대 교수.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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