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크루서블

'크루서블(The crucible)'은 '끓는 용광로'란 뜻이다.

이 영화는 집단 히스테리를 다루고 있다.

'히스테리'란 정신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무의식적인 현상이다.

경련을 일으키거나, 사지가 마비되고,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실신하기도 한다.

정신적 흥분과 황홀상태를 동반할 수 있다.

'집단 히스테리'는 '유행성 히스테리'라고도 하는데, 집단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히스테리 현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17세기말 미국의 어느 마을. 10대 소녀들이 한밤중, 숲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나체로 춤을 춘다.

자기의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기원하며 악마의 의식을 거행한다.

도덕적이고 엄격한 종교적 생활에 짓눌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소녀들이 금기된 자유를 부르짖고 있었다.

이들의 주동자는 에비란 소녀다.

그녀는 부모가 인디언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고통스런 기억이 있다.

하녀로 떠돌던 에비가 농부 존의 집에 있을 때다.

돌발적이고 색정적인 에비는 유부남 존과 금지된 정사를 나누고 만다.

존의 아내는 에비를 내쫓는다.

그러나 에비는 존으로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에비는 친구들을 모아 악마의 축제를 벌이고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이다.

존의 아내를 죽게 해 달라고. 그래서 자기가 그의 아내가 되게 해 달라고.

그러나 이 광란의 장면을 마을 사람에게 들키고 만다.

당황한 소녀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이중 몇 명이 의식불명에 빠진다.

에비는 마귀가 시켜서 한 행동이라고 둘러대며, 소녀들을 위협하여 자기를 따르도록 한다.

겁에 질린 소녀들은 에비의 최면에 걸려든 셈이다.

소녀들의 의식불명은 처벌을 면하기 위한 히스테리 현상이다.

그러나 마을은 온통 악마에 관한 아우성으로 들끓는다.

마을 사람들, 특히 영향력 있는 목사, 판사, 마을유지 등의 지나친 관심과 우려는 오히려 병을 확산시켰다.

17세기에는 악마학이 성행하여 히스테리 증상을 마녀의 짓으로 보았으므로, 무고한 마을 사람들은 마녀 재판을 받고 하나 둘씩 교수대의 희생자로 사라진다.

일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만, 존의 부인을 향한 에비의 증오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질투와 변명으로 시작되었을 집단 히스테리는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후에야 종료된다.

중세에 어린이 십자군 3만명이 성지를 찾아 막연히 집단적으로 집을 떠난 것이나, 1970년대 말 경북 어느 지방에서 여중생들의 집단적인 실신도 집단 히스테리의 좋은 예이다.

요즘은 과거의 집단 히스테리와 비슷한 현상은 없다.

그러나 어떤 암시성을 가진, 유행성이 강한 현상들은 요즘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얼짱, 몸짱이란 유행어로 퍼져나가는 외모 지상주의나 살빼기 증후군이 그렇고, 특정 권위자에 대한 과다한 추종이나 몰입이 또 그러하다.

전환기에 놓인 사회일수록 피암시성이 증가하여, 집단 최면 현상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합리적이고 냉정한 태도가 요구되며, 무리한 억측이나 무책임한 소문은 비이성적 행동을 전파시키는 요인이 된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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