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약 20조원이었던 전국재래시장 총매출은 2003년 14조원으로 30% 이상 하락했다.
전국 2천여개 재래시장 가운데 그나마 70, 80%정도라도 입점해있는 시장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재래시장 위기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재래시장의 위기를 이대로 두고 봐도 될 것인가,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살려나가야 할 것인가. 재래시장이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살펴보고 재래시장 상권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정책과 방향이 없다
재래시장 관계자들은 재래시장 위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요인으로 대형소매점의 도심난립을 꼽았다.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대형소매점들이 도심 곳곳에 들어섰지만 사실상 입지와 크기에 대한 규정은 없는 상태이다.
시장상인들도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동구시장 이균옥 회장은 "대형소매점이 들어서기 전에 그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근 영세상인들과 협의과정이 필요한데 아무 제재 없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대형소매점이 들어서기 위한 조건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제각각이다.
현재 춘천, 대전, 횡성 등은 지자체 조례에 따라 대형소매점이 들어올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이는 특정 몇몇 도시에 국한될 뿐이다.
숭실대 경영학부 안승호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대형소매점에 대한 규제나 절차가 없는 나라도 없다"고 말했다.
각 도시 상황에 따라 입지 조건이 달라지고 예측불가능하면 오히려 외국 투자업체들로부터 좋지 않은 투자 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부재에 앞서 변화 모색을 게을리했던 시장 상인들의 자세에도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조광현 사무처장은 "막상 동네상권 살리기 운동 등을 진행해도 이익 주체 당사자인 상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말했다.
또 각 상인들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제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한 시장 관계자는 "간판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교체하는 데만 해도 말썽이 얼마나 많은지,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시장 내 갈등도 재래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점상과 시장 상인들과의 오래된 갈등. 시장 관계자들은 "정말 극빈층의 노점상도 있지만 기업형 노점상들도 많아, 노점과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건물주들과 임대상인들과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시장 번영회장은 "건물주나 지주가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져 소방도로 하나 내기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시장 리모델링을 실시해 상권이 활성화되면 건물주가 상가 임대료를 높이는 사례도 비일비재해, 건물주들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선 상인이나 건물주들 모두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고 협조해야 시장의 미래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새로운 변화가능성 추구 필요
현재 재래시장은 전자상거래나 상품권 제작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지역내 칠성시장, 서문시장 등은 홈페이지를 갖추긴 했지만 전자상거래 시스템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칠성시장 유원길 번영회장은 "전자상거래를 추진하기 위해선 물류 시스템과 운송 계획 등이 마련돼야 하겠지만 아직 상인들간에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적극적으로 추진하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남대문 시장(www.enamdaemun.com)과 우림시장(www.urimsijang.com) 등은 이미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갖춰 쇼핑몰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청주시는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재래시장 전용 상품권까지 제작,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5천원권, 1만원권, 2만원권 등 세 종이 나와 있으며 이는 청주시 재래시장 협의회에 가입된 13개 재래시장 대부분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청주시청 지역경제과 담당자 신용희씨는 "3월 말까지 당초 발매액의 약 80%인 2억4천만원이 판매돼, 예상한 것보다 기대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어 재래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지원하는 담당 공무원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한 요소이다.
서울 우림시장의 경우 담당 공무원이 시장에 뛰어들어 직접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시 조례까지 바꾸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유통관계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주장하는 것은 "정부 주도의 재래시장 현대화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여건 마련 이상의 것은 아니라는 것. 대구시상인연합회 박근규 명예회장은 정부가 예산을 마련한다 해도 이를 받을 수 있는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리더십을 갖춘 상인조직이 마련되지 않은 시장이 대부분이라는 것. 이런 의미에서 국민대 경영대학원장 이수동 교수는 재래시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소유통업의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발 능력을 가진 리더가 자생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유통 산업으로 자리잡은 대형소매점이 재래시장과 산업적 노하우 등을 나눠가지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장안대 유통경영학과 변명식 교수는 "대형소매점이 갖고 있는 판촉능력 등을 영세상인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현재 중소유통업의 70% 이상이 50대 이상의 고령자인 만큼 생존능력을 기르도록 대기업과 정부가 기회를 나눠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결국 경쟁력을 갖춘 3분의 1 가량의 시장은 살아남을 것이고 나머지는 무너지거나 현상유지를 할 뿐'이라고 전망했다.
규모가 작은 시장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형점에서 다룰 수 없는 특화된 상품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숭실대 안승호 교수는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대형소매점의 상품군은 비슷비슷하다.
따라서 틈새 시장을 파고들어 다양한 상품군을 갖춰나가는 것이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재래시장을 정부나 시민이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상인연합회 박근규 명예회장은 "재래시장은 지금껏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고 뿌리를 이뤄온 만큼 재래시장은 단순히 경제논리를 앞세워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재래시장에 생계를 걸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이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상인들에게 더욱 절실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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