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지도층 자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카뮈는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는 그 판단이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시지프스가 힘들여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면 바위는 어김없이 자기 무게 때문에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다.

이 같이 부질없어 보이는 노력을 카뮈는 사람들의 삶이 기대나 희망사항과는 달리 의미가 없다고 느끼면서도 하루하루를 주어진 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조리'를 이 작품에서 그려 보였다.

▲요즘 이 '부조리의 끈'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세기 이래 돌발적인 죽음은 자동차 사고에 의한 것이 가장 많았으나 근년 들어서는 자살 사망률이 이를 앞지르고 있을 정도다.

그 유형도 생계형에서 살인을 동반한 경우, 실연, 학교 성적 비관, 정.재계의 고위층 인사들의 막다른 선택 등 각양각색이라 우리 사회가 자살의 '티핑 포인트'에 이르렀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특히 비리에 연루되거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수감됐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라 안타깝다.

어제는 비리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남지사가 한강에 투신,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지난해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올 들어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 등에 이은 죽음이어서 충격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자살을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 정신적 혼돈(아노미)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 한다.

불만과 책임 회피의 극단적인 표현이거나 자신의 죽음으로 치부를 덮어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려는 심리적 부담이 요인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아무튼 평소 부러움을 사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을 만나거나 모멸감을 느낄 경우 충동적인 결정을 할 확률이 커질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살에 대한 자의적 풀이를 하는 건 그 죽음의 의미나 진실과 동떨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아 예단은 위험하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신성 모독'으로 규정, 엄격한 자제를 일깨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인간과 사회 자체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떨칠 수 없다.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다고 해서 쉽게 생명을 포기하는 세태, 그것도 지도층 인사들이 그 막다른 길을 택하는 일이 빈발하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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