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아까워라 '證道歌'

15년여 전에 있은, 눈이 툭 튀어나올,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한 도난사건 한토막이 있다.

서울의 모 대학교수는 내일 한 고서(古書)의 발굴사실을 발표할 예정으로 흥분해 있었다.

공인을 받게 된다면 세계가 출판의 역사를 다시 써야할 '대사건'이 될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발견은 하룻밤새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발표에 맞춰 올라온 안동의 책소장자 ㅂ씨가 인사동 여관에서 잠을자다 책가방을 도둑맞아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이 책이야기는 학계와 고서업계에 전설로 묻혀버렸다.

온세계 관련 학계가 까무러칠 대발견도 실물이 없는 이상, 주장해 봤자 웃음거리가 될게 뻔한 일이다.

왜 세계가 까무러칠 사건인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1972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 '세계도서의 해'기념전에 출품, 구텐베르크(1452년 간행) 성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면서 '세계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우뚝선 책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간단히 '직지심경'이다.

도난당했다는 그 책은 적어도 이 직지심경(1377년 간행)을 139년이나 앞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139년이나 빠르다는 것인가? 금속활자로 찍은 이 책의 목판복각본(覆刻本) 1239년판(고려 고종26년)이 이미 국내에서 발견돼 보물 758호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활자본이 발견된다면 "직지(直指)를 돌려달라"고 프랑스에 애걸복걸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이 책의 이름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다.

참선의 경지에 다다르기위한 스님들 필독의 서(書)라고 한다.

다시 역사를 조금 거슬러 가보자. 국보70호-이 땅에 단 한권뿐인 '훈민정음(세종28년, 1446년)'은 어디서 발견된 것일까? 시절은 1930년대 중반, 장소는 안동(安東) 어느 종갓집이다.

상인을 통해 고(故) 간송(澗松) 전형필님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한글을 배우는 대한민국 국민이 영원히 가슴아파하고 부끄러워했을 책이다.

동국정운(東國正韻.국보71호) 세책과 함께 발견당시 이 책은 누군가가 책장을 한장 한장 모두 뒤집어 묶어서 언문(한글) 연습을 한 탓으로, 혜안(慧眼)이 아니고서는 화장실용도로 끝났을게 틀림없다.

왜 낡아빠진 책이야긴가? 책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 스러져가는 우리 대구와 경북의 문화유산, 그 '소프트웨어'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충청북도의 소도시 청주는 남의 땅,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경' 책 하나로 '직지찾기 현상금'이란 이벤트를 울궈먹고 또 울궈먹고, '직지'한권 나올때까지 대대로 울궈먹을 판인데 대구.경북은 갈라져서 뭘하고 있나, 배가 아픈 것이다.

왜 청주가 직지타령인가? 프랑스에 있는 단한권(하권)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맨 끝장에 '고려 우왕 3년 청주목 흥덕사인(淸州牧 興德寺印)'이라는 정확한 간기(刊記)가 꽉 박혀있는 덕분이다.

그래서 청주는 그 절터에 청주고인쇄박물관까지 세웠다.

'청주목 흥덕사'라는 여섯글자를 놓치지 않은 청주시의 그 안목이 놀랍다.

마침내 유네스코는 '직지'를 세계기록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렸고 지난달 28일에는 '유네스코 직지상'까지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쾌거가 아닌가? 상금은 3만달러, 시상식은 해마다 청주시가 지정한 '직지의 날'에 청주나 파리에서 갖는다고 한다.

실물 한권 없으면서(직지'목판본'은 국내에 있음) 세계적 이벤트를 만들어 내다니-청주로선 이젠 '직지'가 한권 나오면 대박이요, 안나와도 그만인 것이다.

대구와 경북은 뭘하고 있는가? 대구는 5년 전부터 시립미술관 하나 짓는다 해놓고 올해도 착공은 틀렸다.

전시계획물도 '그림'뿐이다.

그리고 채워 넣을 그림은 지금 하나도 없다.

도학동에 세운다는 박물관타운 계획도 그렇다.

인간문화재(유기장) 이모씨가 자신이 소장한 방짜유기 등 1천200여점을 무상기증한다니까 방짜유기 박물관을 세운다는 것이고, 묻힌 김에 민속관.야외학습장 등을 한데 묶어 '박물관타운'을 꾸미겠다고 한다.

도심과 외곽 곳곳에 있던 시유지 다 팔아먹고, 한데 모을 수밖에 없는 그 심정 이해하지만 역대 대구시장의 문화(분산)에 대한 몰이해가 중병(重病)차원임은 자인해야 겠다.

그나마 경북은 좀 낫다.

국학진흥원이 팔만대장경에 맞서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이라도 벌이고 있으니까.

다시 거슬러 가보자. 서울시가 재작년에 오픈한 '서울역사박물관'이 지금 간판으로 내세우는 주요 소장유물이 바로 용비어천가(2책) 목판본 원본이다.

이 역시 불과 2년전 봉화에서 나와 서울로 빠져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몇십권은 분명 찍었을텐데 딱 한권 훈민정음 원본이 나온 곳이 안동이다.

불발탄으로 끝난 '증도가' 활자본의 출처가 안동이다.

용가(龍歌)도 안동 인근이다.

그 당시 우리지역에 시립(市立)이나 도립으로 역사박물관이 하나 있었더라면, '정신 제대로 박인' 학자나 문화재 수집가라도 있었더라면 인사동에서 '증도가'가 도둑맞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가 서울로 달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구.경북은 청주의 '직지찾기'보다 더 멋있는 '이벤트'를 벌일수 있었을 것이다.

아깝다 '증도가'여!姜 健 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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