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2)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동서고금의 신화와 동화에서 아버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처럼 투영된다.

'콩쥐팥쥐'에서 아버지는 악독한 계모를 데려오고는 소식이 없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아버지는 후처가 시키는 대로 아이들을 내다 버린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비치기에 아버지는 외롭다.

사랑만으로 자식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것이 인간사. 거센 운명의 질곡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어찌할 도리 없는 가혹한 시련을 준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만큼 시리고 아픈 아버지 상을 그린 음악 작품도 드물다.

곱추로 태어난 리골레토는 천하의 바람둥이인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이자 주구(走狗)로서 힘없는 사람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런 그도 자신의 외동딸인 질다에겐 한 없이 자상하고 좋은 아버지일 뿐이다.

질다를 곱고 아름답게 키우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만토바 공작이 질다에게마저 유혹의 마수를 뻗는다.

순진한 질다는 만토바의 유혹에 빠져 농락당한 뒤 버림받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리골레토는 흐느끼는 딸을 부성애로 감싸 안는 한편, 복수를 결심한다.

리골레토로부터 만토바 살해를 의뢰받은 청부업자는 자신의 여동생을 시켜 만토바를 유혹하게 한 뒤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만토바에게 반한 여동생의 제의로 다른 사람을 죽여 만토바의 시체로 위장할 음모를 꾸민다.

우연히 이들의 대화를 엿들은 질다는 만토바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음을 택한다.

사랑하는 딸이 만토바 대신 죽은 사실을 모른 채 복수에 성공했다며 즐거운 노래를 부르던 리골레토는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오장육부가 갈갈이 찢어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건 저주야!'라고 외치며 무너진다.

죽기 직전의 질다가 잠시 살아나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기에 이 오페라의 결말은 더 비극적이다.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큰 산맥인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빅토르 위고의 '환락의 왕'을 바탕으로 명작 오페라 '리골레토'를 만들어냈다.

리골레토는 권력가에 고용된 어릿광대로서의 열등감과 좋은 아버지 상 사이에서 고통받는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존재이다.

리골레토는 밖에서 억압받지만 가정에서 크고 넓은 그늘을 드리워야 하는 이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와 오버랩된다.

베르디 역시 아픈 가족사를 갖고 있다.

오페라 '리골레토'를 쓸 당시인 1851년 베르디는 재혼을 한 상태였지만 1839년에 두 자녀와 27세된 아내를 모두 잃는 아픔을 겪었다.

'리골레토'에서 질다가 어머니의 이름을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리골레토는 가슴 아픈 사연은 더 이상 묻지 말라며 대답을 꺼린다.

이 장면에서의 리골레토는 베르디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비바람을 피하게 해주는 집과 같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면서 외로움의 눈물로 담은 술을 마신다.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1970년작)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그렸다.

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집에 들어오면 아버지가 된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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