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용천역 폭발 참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동포애가 광범위한 돕기 운동으로 피어나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는 지극히 당연스런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보여준 적대적 남북관계, 크고작은 돕기에 상호주의적 대가 요구, 투명한 분배 주장 등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참으로 급격한 변모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의 입장에선 이런 상황을 막연한 동포애나 인도주의로 여길 게 아니라 이면에 담긴 흐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생각 모으기
우선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번 참사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와 진보, 여와 야가 한결같이 지원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얼마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보수언론조차 범국민적인 동포애에 딴지를 걸어오던 기존의 태도를 완전히 버린 듯하다.
이 같은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와 함께 변화의 지속성 여부에 대해서도 숙고해볼 여지가 있다.
과연 이런 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를 변화의 이유에서 찾아보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논의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포애 한 목소리 이유는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에서는 '민족문제는 냉엄한 비즈니스'라며 냉정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얼마 전만 해도 대북 현금 지원을 반대하며 금강산 관광 보조금을 삭감했던 게 한나라당이다.
1995년 대북 쌀 지원 과정에서 인공기 게양 사건이 발생하자 일부 언론은 '쌀 주고 뺨 맞는다'며 대북 적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그런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이번에는 적극적인 지원과 성금 모금에 나서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시대적인 흐름을 따른 어쩔 수 없는 태도라는 분석이 많다.
햇볕정책과 부산 아시안게임, 대구 유니버시아드 등을 통해 민족 화해의 분위기가 고양된데다 총선 과정을 거치며 진보 세력이 사회 전면에 부상했다는 사실은 보수 세력에도 변신이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이 수구와 냉전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 젊은 층 쪽으로 지지기반을 넓혀가려는 전략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완고한 대북 전략을 고수하다가는 시대 흐름에 낙오할 것을 걱정해 열린 자세를 보이는 척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를 불가피하게 만든 우리 사회의 최근 변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사실은 분명한 일이다.
변화의 동력은 바로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다.
당장 17대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획득한 일이나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진출한 점은 국민의 뜻이 남북 화해와 공존의 길을 택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의 발달과 현란할 정도의 기술 발전이 국민들의 의식을 급속도로 바꿔가고 있는 현실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국민 여론도 과거처럼 일부 색깔론자들이나 사회단체, 정당이나 언론 등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묵묵히 끌어가는 놀라운 역전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역풍의 여지는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냉전적 인식과 이기적 사고를 버렸다고 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예측 못한 참사가 한마음의 인도적 지원을 이끌어냈지만 북한과 민족 문제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참사 초기 언론들이 김정일 암살 음모설에 집착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낙후한 북한의 의료 현실을 부각시키고 북한의 지엽적인 폐쇄성만 나무라는 구태도 여전하다.
이는 과거 대북 쌀 지원이나 수재물자 지원 등에서 드러났듯 자그마한 불상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경우 민족애를 적대감으로 반전시킬 소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민족 차원에서 이런 악의적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대북 경제 지원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개혁.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용천 참사에 대한 지원에 아무런 조건이 없었듯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일이나 남북 경협을 통해 경제 지원에 나서는 일, 철도나 의료 등 기반 시설 확충을 돕는 일 등을 추진하는 쪽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극 속에서 희망의 싹을 피웠다는 표현은 이런 과정을 통해 꽃과 열매로 영글 수 있을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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