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원 총선기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여 동안 한국 정치에는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하나씩 단계별로 더듬어 보자.
먼저, 여야 양당의 선거구호. 열린우리당은 이번 총선에 대해 "단순히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탄핵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줄기차게 강조했다.
아마도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단순한 국회의원 선거 이슈로는 야당에 승산이 없는 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진퇴가 걸린 선거로 상황을 몰아가는 것이 승리의 요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때마침 방송 여론조사들은 탄핵 반대의견이 국민의 70~80%라고 거의 매일같이 보도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입니다.
인물을 보고 찍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한 것도 내용은 상반되지만 연유는 같은 데 두고 있는 것이리라. 하여튼 지나놓고 보니 투표자로서도 국회의원을 뽑은 것인지 탄핵 찬반의사표시를 한 것인지 알쏭달쏭해지는 그런 선거가 바로 4.15선거였다.
또 하나 기이한 것은 투표결과. 열린우리당이 얻은 표는 전체투표의 38.3%로서 보통의 국회의원 선거라면 그렇게 나쁜 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집권당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표는 전부 우리에게 몰아주십시오"라고 명문(明文)으로 내걸어서 얻은 표로는 너무 기대 밖이다.
기권자까지 합친 전체 유권자로 보면 23% 득표에 불과한 수치(數値)이니, 즉 유권자의 77%가 탄핵반대 호소에 호응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방송매체에서 탄핵반대로 매일처럼 보도되던 '절대다수 국민의 뜻'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이와 관련,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여론조사의 문제점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이번 총선결과에 대해 제1, 2당의 의석차이를 무려 80여석까지 보는, '집권당 봐주기'식의 잘못된 출구(出口)조사를 했다.
그래서 방송사와 함께 사과를 했다.
당락이 수십 군데나 뒤바뀌는 등 실제결과와 너무나 차이가 나니까 그들도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권당 봐주기'식의 여론조사가 과연 이번 총선 출구조사만이었을까. 탄핵반대가 국민의 70~80%라던 여론조사, 그리고 실제 탄핵반대표가 30%대에 머문 총선표심, 이 두 사실 사이의 현격한 거리는 왜일까. 물론 탄핵에 반대하지만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에 찬성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이 집권할까봐 할 수 없이 열린우리당을 찍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니 그건 따지나마나다.
총선출구조사는 당일로 정답(正答)여부가 밝혀지기 때문에 조사요원들도 더욱 정확성을 기하려 했을 것이지만 이전의 다른 여론조사는 정확성 여부가 금방 밝혀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사요원이나 검증-분석요원의 모럴해저드를 유발시킬 소지가 적지 않았음을 참작해야 한다.
이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건만 해명하는 이도 해명을 요구하는 이도 없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든 국회의원 선거를 대통령 진퇴가 걸린 선거로 몰아간 열린우리당의 전략이 결국 30%대 득표의 저조한 결과로 그치고 만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새로운 정치적 부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야당에게 결정적인 일격이 되리라고 던진 회심의 한 수가 부메랑이 된 것이라 할까. 하지만 열린우리당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것을 자책하거나 부담으로 보는 이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선거가 아니다"란 말을 언제 했느냐는 식으로 득표율이 아니라 국회의석 과반 확보만을 과대 자찬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노인층 폄하발언으로 전국구 사퇴까지 하면서 근신했던 정동영 의장이 선거 직후 아무런 해명도 없이 웃는 얼굴, 큰 목소리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그 한 예다.
특히 17대 원내의석도 차지하지 못한 데다가 집권당의 제2인자인지도 극히 불투명한 그가 한나라당 대표에게 앞으로의 여야관계를 논하자며 회담을 제의한 것은 분명 오버액션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요행히 그 제의를 호의로 받아들여 체면을 겨우 건지기는 했지만.
마지막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한나라당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거 이후 한나라당에서는 당의 노선과 관련, "좀더 왼쪽으로 가자"는 얘기가 일부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이들이 이번 총선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촛불시위와 방송전파에 의한 줄기찬 세뇌공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 넉넉한 개헌저지선을 갖게 해준 것은 이 나라가 좌파에 의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좌쪽으로 이동함으로써 한국의 좌파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은 한국의 좌파에 대한 무지한 소치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우파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우파는 변심한 당을 계속 붙들고 있을 정도로 미련하지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최재욱 전환경부장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