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업현장 공황 오나 불안감 휩싸여

중국 쇼크, 유가 급등에다 미국의 금리인상 전망까지 나오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산업현장이 '경제가 사실상 공황상태로 빠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때문에 올 1/4분기에 이익이 많이 났던 일부 업체들도 올 투자계획을 보수적으로 가져가기로 방침을 정하는 등 산업전반에 투자 심리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으며 '돈이 묶일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영세업체의 연쇄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가

블랙먼데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주가가 폭락한 10일 오후 대구 성서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요즘 상황이 엉망진창"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원자재 가격이 50%나 올랐는데도 납품단가 인상은 이뤄지지 않고 그나마 일감도 많지 않은 데다 원청 업체는 120일짜리 또는 90일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방법으로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

"요즘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까먹고 삽니다.

죽지 못해 공장을 어쩔 수 없이 돌리는 것이죠. IMF요? 그 때보다 더한지 다 알면서 왜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현금 주고, 그것도 턱없이 올라버린 가격에 원자재를 가져와서 120일짜리 어음을 받으면 직원들 월급이나 제 때 줄 수 있겠습니까" 이 관계자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화섬.직물업계는 사정이 더욱 나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가, 환율,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는 신 3고시대에 들어선 데다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분류한 금융기관의 대출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심각한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폴리에스테르 일반 원사를 생산하는 대구 달서구 한 업체는 "최근들어 아예 원사조차 구하지 못해 공장을 돌리는 날보다 기계 가동을 멈추는 날이 더 많다"며 "인근 염색공장이 올 초 부도를 냈고 산업용섬유업체로 전도가 밝았던 한 섬유업체마저 이달 문을 닫는 등 드디어 섬유 사업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우울해 했다.

스트레치 직물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한 업체 대표는 "최근 은행에 2억원 상당의 대출을 신청했지만 한마디로 거절 당했다"며 "지난 10년간 단 한번도 연체가 없었고 사상유례없는 대불황에도 적자는 면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하소연했다.

섬유업체들은 금융권이 섬유산업 전체를 사양산업으로 규정해 일부 우량 기업들까지 대출 부적격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건실한 섬유기업마저 무차별적으로 무너질 경우 지역 섬유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더 나빠지나

중견기업들조차 상황을 어둡게 보고 있다.

중국 쇼크, 유가 급등, 미국 금리 인상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져나오는 이 상황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은 내수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나마 기업의 이익구조를 떠받들어왔던 수출전선에서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귀식 평화산업 부사장은 "연이어 악재가 터져나오면서 각 기관들이 경제회복시기를 당초 2/4분기에서 3/4분기로 늦추는 등 비관적 전망이 더 많다"며 "결국 내수는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수출에서 이를 만회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했다.

이 회사는 올 1/4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50% 가까이 늘어났지만 올 투자 계획을 일단 보수적으로 운용키로 하는 등 이른바 '장사가 잘되는' 역내 대다수 기업조차 '긴축'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규모가 작은 기업으로의 연쇄적인 투자 위축현상이 번져가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해질 우려가 나타나고 있으며 결국 근로자들의 주머니가 엷어져 경제전반이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성서산업단지 관리공단에 따르면 최근 공장 매물이 급증하고 있으며 기업들의 투자의욕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기계장비제조업체인 삼익LMS 김경호 차장은 "기계를 납품하는 우리 회사 실적을 보면 올 1/4분기엔 작년 같은 시기 대비 153%, 올 목표 대비 126%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괜찮았는데 이는 반도체.LCD 등 호황인 특정업종 덕분"이라며 "특정 몇 개 업종을 제외하고 다른 업종을 보면 나쁜 상황이 대부분으로 앞으로 전망도 좋게 볼 수만은 없다"고 했다.

일부 업체는 전망이 좋아질 리 없다며 아예 '보따리'를 싸고 있다.

중국 산둥지방으로 간다는 모 섬유업체 대표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주5일제를 도입한다고 하며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노동 3권을 보장해야한다고 말하니 향후 최소 20% 이상의 인건비 증가가 예상된다"며 "정부가 기업인들을 중국으로 등 떠밀고 있으니 우리는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난국을 어찌하나

기업인들은 중국 쇼크, 유가 급등 등 외생적 변수도 문제겠지만 정부의 무대책이 가장 '두려운 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모른 채 엉뚱한 논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대구 성서공단의 한 기계업체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무대책이고 세금은 똑같이 걷어가고, 이래서야 기업인들이 어떻게 공장을 꾸려나갈 수 있느냐"며 "비상 시국에는 비상 대책이 나와야하는데 오늘도 세금고지서는 똑같이 날아오고 규제는 여전히 쏟아지니 기업은 황무지에서 혼자 발버둥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장충길 대구.경북기계공업협동조합 상무는 "현재 이익은 올리지 못한 채 공장문만 열어놓고 있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 이런 추세라면 하반기에는 연쇄 도산이 잇따를 것"이라며 "그러나 어렵다고 한탄만 할 수는 없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각오로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상무는 또 "회원업체들을 보면 외환위기에도 불구, 기술개발에 전력했던 업체들은 지금의 위기에도 어려움을 덜 겪고 있다"며 "기술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기업들은 다시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임경호 대구상공회의소 기획조사부장은 "이런 상황 하에서는 기업들이 일단 투자목표를 신중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며 "모든 경영요소를 다시 점검하는 등 경영합리화에 전력해야하고 마케팅 부문에서는 일단 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면서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위기 돌파구"라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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