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가정교육을 되살리자

계절의 온화함에 걸맞게 달력 속의 5월은 온통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게 하는 기념일들로 가득하다.

개인에 따라 '가정'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가정은 밝고 따뜻한 모성적 이미지로 가득 찬 공간이다.

유교문화의 영향에 힘입어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가정은 공동체의 새로운 구성원들을 길러내는 기초적인 인성(人性) 교육의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강국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가정교육의 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의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기능은 서구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퇴행 일로를 걸어왔고, 그 결과 이제는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어 버렸다.

도시화로 상징되는 산업화는 가정과 사회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끊어 버렸고, 그에 따라 개별 가정들은 기초교육의 장이라는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시가정의 중추인 오늘날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기를 살리는 데에만 신경을 쓸 뿐 정작 중요한 인성교육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근래 들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고 또 그에 따라 독신이 더 이상 특이할 것이 없는 삶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정의 위상은 급격히 축소되어 왔다.

가장과 아이들을 밤늦도록 직장과 학교에 잡아둠으로써 가정을 하숙집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오늘의 사회적 현실이 이런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개탄조의 이야기 하나는 이런 문제들과 관련하여 새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젊은 주부가 아이를 데리고 가구점에 쇼핑을 갔다.

주부가 가구를 둘러보는 사이 아이가 진열된 가구 위를 마구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자 주인이 주의를 주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그 젊은 주부는 "그까짓 가구 내가 사면 되지 왜 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하더란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비뚤어진 자식사랑이 빚어낸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은 존속상해 사건이나 공중도덕을 비웃기라도 하듯 갈수록 심해지는 청소년들의 일탈행동과 같은 사회적 병리현상 뒤에는 우리의 전도된 가치관이 가로놓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한 가정의 파멸을 넘어 공동체의 건전한 질서를 저해함으로써 국가적인 발전도 가로막는다.

이와 관련하여 탈무드 교육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이나 투철한 공중의식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저력도 결국은 가정교육의 힘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가정이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전사(戰士)나 온실 속의 왕자와 공주를 키우는 장소로 전락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

거기에는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건전한 윤리의식이 뿌리내릴 토양이 더 이상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을 책임진 교육당국이나 관련 단체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측면도 강하다.

일전에 한국국학진흥원의 국학교육전시실에 들른 젊은 주부들에게 가정교육에 대한 생각을 물어 본 적이 있다.

대부분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반응이었다.

가정교육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젊은 주부들의 이런 이야기는 부끄럽게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그동안 가정교육의 중요성만 강조했지 그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는 정작 무관심했던 것이다.

우리의 우수한 가정교육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가정교육의 당위성에 대한 강조 못지않게 교육당국과 관련 단체에서 이런 실질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가령 오늘에도 의미있는 선조들의 가정교육 전통과 외국의 사례들을 엮어 젊은 주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가정교육 안내서를 만들어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급하는 일도 작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맞는 '가정의 달'이 연례행사가 되기보다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중지를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심우영(한국국학진흥원장.전 총무처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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