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벽 작고한 구상(具常.85) 시인은 병원 중환자실의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투병을 하면서도 격월간 '한국문인'(2003년 10, 11월호)에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자'란 유언장과 함께 시 '오늘'을 발표했다. 오늘을 살고 있는 건 곧 영원 속의 한 과정임을 일깨우는 이 시의 메시지는 평생 구도자의 자세로 일관, 모든 생명의 구원을 노래해온 구 시인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처럼 그는 '오늘을 영원'으로 여긴 구도자이자, 청빈한 삶을 추구한 '성자같은 시인'이었다.
해방 후 원산에서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밤' '여명도' '길'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구 시인은 이중섭이 표지화를 그린 이 동인지의 수록작품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부터 반사회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자 월남했다.
6.25 전쟁 때 남하한 구 시인은 대구.경북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53년부터 74년까지 왜관에 머물며 지역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가졌고 '친구'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구상 시인과 50여년간 인연을 맺은 윤장근(71) 죽순문학회 회장은 "구상 시인은 지역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지역문단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구 시인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구 시인의 부인 역시 왜관에서 2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는 등 구상 시인은 지역과 많은 인연을 가졌고, 이에 칠곡군은 2002년 구 시인이 지인들과 교류를 나누었던 옛집 관수재(觀水齋)를 복원하고 구상문학관을 건립했다.
구 시인은 기독교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미의식을 추구했다. 여기에 전통사상과 선불교적 명상 및 노장사상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정신세계를 수용해 인간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적 경향의 작품을 많이 썼다. 또 시적 기교와 이미지에 주력하기보다 풍부한 의미와 암시를 자아내는 평범한 시어를 택해 존재와 현상에 대한 의식을 형이상학적으로 담아내는 점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저서에 시집 '구상시집', '말씀의 실상', '까마귀', '개똥밭', '조화 속에서', '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 '인류의 맹점에서' 등이 있다. 수상집으로는 '영원 속의 오늘', '실존적 확신을 위하여', '삶의 보람과 기쁨', '시와 삶의 노트' 등이 있다. 그밖에 사회평론집 '민주고발', 묵상집 '나자렛 예수', 시론집 '현대시창작입문', 희곡 시나리오집 '황진이' 등을 남겼다. 생전의 업적으로 금성화랑무공훈장, 국민훈장동백장,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말년에 '구상문학총서'(전10권. 홍성사 펴냄)를 기획, 제1권으로 자전 시문집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를 출간했으나 완간을 보지 못했다. 청빈한 삶을 살았던 그는 박정희 정권 때 대학총장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세상의 시비에 휘말리기 싫다며 조용히 초야에 묻히길 자처했다. 문단의 큰어른이면서도 이렇다 할 감투 하나 쓰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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