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녹색물결 보성차밭

물러가는 봄이 아쉬운 듯 입하가 지나자 비가 잦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내리는 비는 산천을 물들이던 연두빛을 녹색으로 탈바꿈시키고, 높아지는 하늘과 함께 그늘색도 더욱 짙게 만든다. 곡우를 지난 전남 보성에는 온통 녹색물결이다. 이번 주말은 보성차밭에서 우전(雨前)향기에 취하고 싱그러운 차밭을 걸어보자. 산과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진 삼경속에 예와 의와 차로 유명한 보성은 삼경,삼보향의 고향. 보성 끝자락 율포해변에는 갯벌체험장과 녹차 해수탕도 있고 환상적인 해안도로 드라이브길도 있다.

◇보성차밭

보성읍에서 바닷가 마을 율포로 빠지는 18번국도를 접어들면 봇재라는 언덕 조금 덜 가서 대한다업 보성차밭이 나온다. 들어서는 입구가 이색적이다. 직선으로 쭉쭉빵빵하게 뻗은 삼나무가 5백여m이상 터널을 만들고 있다. 산책로 좌우에 도열하듯이 서 있는 삼나무길을 걷다보면 왼쪽에 녹차음식 전문점인 차목원이 나온다. 녹차 불백, 녹차 주물럭, 녹차 떡국, 녹차 생삼겹, 녹차수제비 등 온통 녹차 음식이다.

조금 더 오르면 오른쪽에 조그마한 계곡이 길과 이웃해 흐르고 특산품 판매점이 나온다. 삼나무길이 끝날 즈음 오른편에 작은 연못이 있고 찻집과 음식점이 있는 건물이 'ㄱ'자로 들어서 있다. 입구를 가로막은 듯 산아래 서있는 삼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녹차 밭이다. 밑에서는 그저 초록색만 보일뿐. 잘 다듬어진 키작은 녹차밭 사이로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른다. 꽤 경사가 졌지만 녹차밭에 마음이 뺐겨 힘든줄 모른다.

5분쯤 올랐을까? 눈앞에 펼쳐진 황홀경에 저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어린아이 키보다 작은 차나무들이 곡선으로 햇볕을 받으며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 차 있고, 수만그루의 삼나무가 30만평의 차밭을 둘러싸고 있다. 까까머리 중학생 머리를 하고 있는 차나무들이 초록의 물결을 이루며 온 산에서 카드섹션을 벌이고 있다. 곡우가 지나면서 첫물 수확을 마친 차나무 남쪽부분은 연초록이고 아직 따지 않은 부분은 진초록색이다. 마치 모범생이 밑머리를 '바리깡'으로 단정하게 깎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언덕에 있는 정자나무에서 바라보는 차밭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차밭의 한가운데다. 위, 아래, 좌, 우가 모두 차밭이다. 정자나무 그늘에서 하염없이 앉아 이 멋진 풍광을 호젓하게 즐기면 내려오기 싫어진다.

정자나무 동남쪽 아래에는 예쁜 집 한 채가 서 있는 작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 아래로 멋지게 휘어진 삼나무길이 있다. 모 CF에서 수녀와 비구니가 자전거를 타던 그 길이다. 영화 '선물', 드라마 '온달왕자' 도 이곳에서 찍었단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다. 산비탈의 굴곡을 따라 만들어진 차밭은 위치와 각도에 따라 제각각 다른 절경을 만들어 낸다. 이곳은 아무곳에서나 사진을 찍어도 멋진 바탕화면을 만들 수 있다.

보성차밭을 나와 봇재를 넘는다. 정상을 지나니 흰색 2층 누각이 나타난다. 다향각이다. 2층에 오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차의 바다가 펼쳐진다. 이산에도 저산에도, 온 골짜기가 다 차밭이다. 규칙적으로 곡선을 가진 차나무들이 그야말로 녹색 융단을 펼쳐놓은 듯이 발아래 펼쳐 있다. 호수를 낀 산마다 차나무의 연녹색 파도가 일렁인다. 이맘쯤 차밭은 가장 아름답다. 참새 혀처럼 가녀린 찻잎이 막 돋기 시작하는 6월 초까지는 연록의 어린 차잎을 따는 아낙들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다.

◇율포 해수욕장

연녹색 여행에 더하는 재미는 갯벌체험과 녹차해수탕. 봇재를 넘어 계속 남쪽으로 달리면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어촌마을이지만 아직도 싱싱한 갯벌이 살아 있는 율포에 닿는다. 갓난아이 새끼손톱 크기의 작은 게들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물빠진 갯벌을 파헤치면 금방 바지락을 캘 수도 있다.

낙지도 많이 나와 곳곳에서 탄성소리가 들린다. 어린이와 함께라면 모처럼 부모노릇 톡톡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낙지를 잡으려면 소금이 필요하고 장화와 호미를 준비하면 좋다. 바로 옆에 있는 녹차 해수탕은 지하120m 지하해수와 하루 150g의 녹차를 밤새 우려낸 녹차탕이 있다. 2,3층에서 넓은 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피로를 풀기에 안성마춤이다.

돌아오는 길은 율포해수욕장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득량면 비봉리 선소마을을 거쳐 벌교로 오는 해안도로를 달리면 시간도 절약되고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만날 수 있다.

◇가는 길

대구→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IC→벌교→보성(2번국도)→기러기 휴게소 지나 육교밑 좌회전(18번 지방도)→봇재

◇차의종류=녹차는 따는 시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곡우전에 따는 햇차를 우전(雨前)이라 하는데, 맛이 부드럽고 감칠맛과 향이 뛰어나 값이 가장 비싸다. 찻잎이 참새 혓바닥처럼 나온 것을 세작(細雀)이라 하는데 6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수확하고, 향은 강하지만 감칠맛이 떨어진다. 8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딴 차는 중작(中雀)이라 하는데 떫은 맛이 강하고,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까지 수확하는 대작(大雀)은 엽차용으로 쓰인다.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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