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황혼이혼

근래 들어 이혼소송이 빈번하다.

먼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단순한 사회현상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칠순된 할머니의 이혼소송을 상담한 적이 있다.

솔직히 그 동안의 긴긴 세월을 참으며 생활해 왔고, 자식들도 이미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나이에, 더욱이 인간 평균수명으로 계산하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굳이 이혼이라는 결단을 해야 하는지가 너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지나간 인생역정을 듣고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단 하루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보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에 당당히 거절도 못해본 세월들이었다.

나아가 형사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정도의 신체적인 폭행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당했다는 것이다.

소송을 준비하던 중 큰아들의 몇 차례 전화 이후에 그 할머니는 소송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당연히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기에 이를 승낙하고, 소를 취하하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몇 개월 후 다시 그 소송을 필자에게 의뢰했다.

다시는 소송하다가 중단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결국 위 이혼소송은 법원의 적극적인 조정과 할머니의 호응에 의해 당분간 경제적인 도움을 조건으로 별거하기로 합의하였다.

필자는 나름대로 황혼에서의 헤어짐을 막았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을 가지면서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화합을 기대했다.

얼마 전 그 할머니로부터 한 통화의 전화를 받았다.

별거 이후 단 한번도 어김없이 생활비를 받았고, 그 어떤 지나친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할아버지가 당신을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고 소홀하여 서운하다는 이야기였다.

별거에 관한 후회로 생각되었다.

그 날 필자는 변호사가 이혼소송을 대리하는 것이 그 할머니에게 절차적인 도움외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는지 선뜻 판단하기 어려웠다.

또 법적 기준에 의한 판단이 과연 두 사람이 함께 한 세월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는지도 의문이다.

설창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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