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섹시스타라면 리처드 기어와 다이언 레인을 꼽았다. 기어는 '브레드리스' 같은 영화에서 전라의 연기로 뭇 여성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레인도 '나이트게임'에서 오동통한 가슴을 통째 드러내 보이면서 젊은 청춘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제 중년. 둘이 부부로 만났다. '언페이스풀'(2002년). '부정한'이란 뜻의 제목에서 이미 불륜을 감지한다. 원작은 프랑스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부정한 여인'.
'언페이스풀'은 다이언 레인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난 아내의 단내나는 욕정의 변화과정을 섬세하면서도 리얼하게 연기했다. 불륜과 살인이라는 비교육적인 영화(?)로는 드물게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에게 돌아갔지만,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오감만족'은 레인이 훨씬 나았던 것 같다.
결혼 10년째인 코니 섬너(레인). 자상한 남편(리처드 기어)과 귀여운 아들과 함께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여자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코니는 한 남자 폴(올리버 마르티네즈)을 만난다. 그리고 그 남자에 빠져 모든 것을 잊고 욕정을 불태운다.
레인은 육욕과 사랑, 질투와 죄책감, 행복과 엑스터시를 오가면서 바람난 여인의 감정들을 쏟아낸다.
'언페이스풀'은 123분의 러닝타임을 정확히 '에로'와 '스릴러'로 양분한다. 사실 에로의 맛은 스릴로 배가되는 법. '바람난 아내'라는 컨셉은 이미 스릴러의 양념이 쳐진 것이다. '희대의 바람둥이'로 각인된 리처드 기어가 아내의 정부를 살해하면서 '마음고생' 심한 남편으로 나온 것이 재미있다.
불륜 정사신은 네 군데. 폴의 아파트와 카페 화장실, 영화관, 아파트 계단. 첫 정사신은 갈등과 주저로 보는 이로 하여금 조바심이 나게 한다. 가서는 안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몸이 원하는 위험한 길을 택하는 코니. 음악이 흐르고 둘은 춤을 춘다.
"아냐, 이게 아냐". 돌아서는 그녀를 폴은 사정없이 낚아챈다. 코니의 몸도 이미 그를 원하고 있다. 육욕에 흔들리는 그녀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한다.
첫 정사신은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의 코니와 교차편집했다. 첫 정사를 떠올리며 실성한 듯 울고 웃는 코니는 불륜에 대한 죄책감과 걷잡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함께 묻어나는 멋진 장면이다.
이 후의 정사는 모두 정상적인 장소가 아니다. 누구나 엿볼 수 있는 공개된 장소를 택해 화급하게 처리된다. 불륜의 위태로움과 함께 미친듯이 질주하는 욕정의 파노라마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친구들이 있는 카페의 화장실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치러지는 정사와 영화관 안에서의 정사는 관객에게 '훔쳐보기'의 심리를 묘하게 자극한다.
'언페이스풀'은 불륜과 살인을 그린 작품이지만, 장면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답다. '나인 하프 위크'의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특출한 심미안. 클로즈업과 역광을 번갈아 쓰면서 흔들리는 여심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특히 폴란드 출신 얀 카즈머렉이 맡은 음악은 일품. 대부분의 O.S.T.가 국내에서 출시되지만, '언페이스풀'만 라이센스 출시가 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원판이다. 평화로운 코니의 집 전경과 함께 흐르는 시작 장면의 피아노 선율은 특히 빼어나다.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결말을 두고 제작사(폭스 스튜디오)와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는 폴을 살해한 남편과 코니가 함께 경찰서 앞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있는 것으로 끝이난다. 제작사가 애매하다며 결말을 수정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라인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DVD 타이틀에는 리처드 기어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부록으로 들어있다. 결국 자수한다는 결론인데,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라인의 결정이 백 번 잘한 일. 이와 함께 영화관 앞에서 벌이는 정사신의 추가장면도 들어 있다.
불륜의 비극적 결말을 몸서리치게 자각하게 하는 영화지만, 중년이 되어 더욱 고혹적인 다이언 레인의 모습만으로도 다시 보고픈 '언페이스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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