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명 고갯길 '역사 속으로...'

죽령.이화령.노귀재...터널 뚫려 옛정취만

'죽령' '이화령' '노귀재' '노루재'….

멀리는 삼국시대부터, 가깝게는 조선조부터 길이 닦인 경북 오지의 유명한 고개들이다.

그 고갯길이 추억의 갈피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숱한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는 불과 몇년 새 허리춤으로 뚫린 터널과 곧게 펴진 새 길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정적에 묻혔고 옛 정취를 더듬는 사람들만이 드문드문 찾고 있다.

봉화∼울진간 고갯길인 봉화군 소천면 노루재는 지난 2002년말 노루재 터널이 완공되면서 200여년간의 소임을 다하고 2년째 휴식에 들어갔다.

봉화군은 노루재에 꽃길과 원두막, 주막 등을 꾸며 자동차 여행객들의 휴식 공간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영주∼단양간 죽령도 인적이 끊겼다.

지난해 초 뚫린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이 고갯길을 대신하면서 12고개 국도는 차량 통행이 뜸하다.

매년 고갯마루에서 열리는 장승축제가 이곳이 유서 깊은 죽령 고갯길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안동∼영주, 안동∼봉화간 삼각 고갯길인 영주시 평은면 예고개는 아예 사라졌다.

안동∼영주간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고갯길을 깍아내리고, 낮은 곳을 성토하면서 고개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을 연결하는 이화령도 차량 통행이 끊기면서 적막한 고개가 됐다.

이화령을 넘는 도로의 길이는 8km. 꼬불꼬불한 이 고개를 넘는 시간은 차량으로 보통 30분, 지체되면 50분은 걸렸다.

그러나 지난 1998년 이화령터널이 뚫리면서 1.6km 터널 통과시간은 2, 3분이면 충분하고 눈.비 등 궂은 날씨에도 막히지 않아 종전 이화령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드물다.

이제 이화령은 조령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주차장으로,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숲, 단풍과 설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청송군과 영천시 경계의 노귀재도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다.

대구~영천~청송 간 국도의 중심축인 노귀재는 교통량이 폭증하면서 지난 2002년부터 고개 중턱에 터널이 뚫리고 있다.

경북 오지의 주요 고갯길의 퇴장은 이 지역의 교통과 물류가 그만큼 원활해졌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내로라 하는 대형 유통업체의 물류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유망 생산시설이 농공단지에 자리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불구불 고갯길마다 삶의 애환이 묻어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길을 기억하지 않는다.

더 빨리, 더 편리하게…. 세상의 속도는 느리고 피곤한 고갯길을 더이상 참아 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달려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박동식.권동순.김경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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