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이 479개 일본대학의 총장들에게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대학의 생존전략 방안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설문결과 '세계화 전략'이 73%로 1위였다.
이유는 이렇다.
일본대학 신입생 적령인구(18세인구)는 10년사이 25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무려 100만명이 급감했다.
앞으로 5년 뒤에는 다시 70만명으로 줄어든다.
학생미달 대학이 급증하게 되면서 일본의 대학총장들은 대학의 세계화 전략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자기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모든 역량과 목표를 대학의 '경쟁력'과 '세계화' 하나로 맞춰나갔다.
당장 도쿄대학은 올해 대학내 재무경영 최고결정기구인 경영협의회를 설치하고 위원 12명 중 5명을 NEC(일본전기) 회장 같은 외부 전문 CEO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끼리끼리 고만고만한 생각과 두뇌로 끌고가던 틀에 박힌 고전적 상아탑 경영방식에서 과감히 뛰쳐나온 것이다.
줄어드는 신입생 충원을 위해서는 이미 4년 전부터 해외입시생 유치에 눈을 돌려 동남아국가 고교생 10만명을 유치해냈다.
도쿄도(都)내에 4개나 난립됐던 도립(都立)대학은 가차없이 한개로 흡수 통합하고 일본경제 단체연합회장 등 경제인등이 후원 관리토록 했다.
콧대센 국립대학 20개도 꼼짝없이 통합됐다.
교수들 반대? 그런 잠꼬대는 아예 통하지도 않았다.
고이즈미 정부 역시 지난 10년간의 장기 경기침체의 해법(解法)은 '경쟁을 통한 대학의 힘 키우는 것'임을 인정하고 지난 4월부터 '국립대독립법인화'(法人化)를 실현했다.
대학이 정부지원만 기대지 말고 알아서 자립해 가라는 제도다.
일본대학의 개혁이 시도됐던 1886년 제국대학령(令)이후 118년만의 법령개정에 의한 대학개혁이었다.
경제산업성(省)장관도 금년말 까지 대학벤처 1천개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내걸면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대학의 연구능력을 높임으로써 일본 경제를 살려낸다…'. 그들의 계산으로는 대학 벤처 1천개를 만들면 연간 18조원의 매출과 14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바로 2004년 5월 현재 이웃 일본의 대학과 총장, 관료, 내각 총리가 지니고 있는 개혁자세요 인식이며 행동의 모습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일본땅에서 비행기로 딱 1시간 20분이면 닿는 부산의 몇몇대학에서는 총장들이 무더기로 시장(市長)보궐선거판에 끼어들어 선대위원 감투쓰고 선거운동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일본의 대학총장들과 집권당 지도층이 대학 개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사이 한국의 일부 대학 총장들은 시장선거 들러리나 서고 집권여당은 캠퍼스에서 끌어낸 총장들을 얼굴마담으로 이용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개혁이고 대학 혁신이며 입만 열면 개혁, 개혁하는 열린우리당의 개혁 자세인지 국민들과 학생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지난 총선때도 대학총장.교수출신 장관들을 선거판에 떠밀어 넣어 낙선의 생채기를 낸 전력이 있다.
애꿎게 끌려나간 총장.교수출신 장관들만 그들 말대로 장렬히 산화했다.
선거판 분위기를 위해 지성의 상징인 대학총장조차도 일회용 소모품처럼 동원되고 낙선과 함께 다시 흔적없이 지워져 버린 것, 그런 것이 일부지만 한국 대학총장의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지성의 명예와 권위를 존중해준 것도 아니고 대학 개혁의 가치 같은건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도 않은 셈이 된 것이다.
지성이 정치판에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는 현실 비판은 정치쪽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정치꾼은 그렇다치고 왜 대학총장이란 최고의 지성들은 정치권의 가벼운 손짓에 쉽게 몸을 허락하고 허리를 굽히는가. 힘센 여당이 부르니 어쩌겠느냐는 연민같은 아쉬움도 부산지역 대학 총장들의 '무더기' 선거판 투신을 보고서는 연민이 아닌 역겨운 비판으로 남는다.
"열린우리당 후보 부인의 부탁때문에 선대 위원직을 맡았다"는 구차한 해명을 들을라치면 정치권이 대학총장이란 지성의 상징을 일회용 나무 젓가락 쪼개쓰고 버리듯 할만도 하겠구나는 측은함마저 느낀다.
남의 부인 부탁받고 캠퍼스 밖에 나가 딴짓하고 다닐 정도로 한가하다면 "대학총장이 할일이 그렇게도 없느냐"는 국민의 핀잔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부이긴해도 대학 총장들이 민주니 국가를 핑계되며 정치에 줄을 서는 풍조가 만연 할수록 대학의 선진개혁과 세계화는 멀어진다.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며 정치 감투에 한눈 팔고 줄서는 총장들이 새겨들을 만한 충고가 있다.
하버드 대학 어느 교수에게 '평소 무엇을 가장 신봉(信奉)하느냐'고 물었다 그 노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민주주의니 국가니 하고 말하는게 더 그럴듯 하게 들리겠지만 허세는 부리지 맙시다.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하버드 대학 하고 내 가정입니다". 총장은 여당권력자나 남의 마누라 부탁보다는 제자의 취업과 내 대학의 경쟁력과 교수들의 연구지원일을 더 아끼고, 정치권력자 앞에 가벼이 머리숙이지 않는 고고한 지성을 더 소중히 지킬 줄 아는 '먹물'근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 근성과 '큰' 할일이 없는 총장은 대학을 떠나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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