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유동물 난치병 치료 새 돌파구로 기대

인간은 일생 중 3분의 1 이상을 잠으로 보낸다.

편안하고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은 행복한 인생의 필수요건인 셈이다.

포유류의 '잠(=수면)'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으로 겨울잠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신진대사를 줄여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알려진 겨울잠에는 수많은 비밀과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겨울잠의 비밀을 완전히 푸는 날에 암과 알츠하이머 치매의 치료 등 의료분야뿐만 아니라 우주여행에까지 응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겨울잠의 효능과 지금까지 밝혀진 비밀, 그리고 응용 가능성을 짚어본다.

◇겨울잠의 신비=겨울잠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체온을 낮추는 신비로운 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출발점. 따라서 들쥐 등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발견됐다.

치사량의 방사선을 쬐더라도 겨울잠을 자는 상태의 포유동물들의 경우 죽기까지의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일부는 아예 치사량의 방사선을 견디고 생존한다는 사실이 1960년대에 밝혀진 것이다.

겨울잠은 면역체계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겨울잠을 자는 포유동물에게 치사량의 진균류를 투여했는데도 세균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겨울잠이 끝날 무렵에는 투여한 진균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 몸 안의 면역력이 엄청나게 강력한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겨울잠을 자면 체온이 낮아져 몸 안에서 균이 번식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그 사이에 강화된 면역체계에 의해 균들이 죽음을 당했을 수 있다는 추론을 내놓고 있다.

암에 대한 내성에도 겨울잠은 특효를 보인다.

발암성 화학물질을 피부에 바르면 피부가 변성하여 암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게서는 이 같은 변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연구됐다.

최근에는 겨울잠을 자는 치프멍크의 뇌 속에 신경세포 섬유들이 많이 응집되어 있는 것이 조사됐다.

그런데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뇌 속에 베타 아밀로이드 등 불필요한 단백질이 축적되거나, 뇌 속에 신경세포가 응집된 채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뇌 신경세포가 응집되어 있다가 깨어날 때 신경세포의 응집현상이 말끔히 사라지는 비밀을 밝혀낸다면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치료에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다.

◇겨울잠의 메커니즘= 일본 미쓰비시 화학 생명과학연구소 곤도 노리아키 박사는 지난 20여 년간 치프멍크의 겨울잠에 대해 집중 연구해왔다.

대부분의 치프멍크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치프멍크의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상태'는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생겨날까. 곤도 박사팀은 간장에서 만들어지는 'HP(겨울잠 특이적 단백질)'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치프멍크의 겨울잠 메커니즘은 이렇다.

뇌의 지령에 따라 갑상성 호르몬이 간장에서 생산되는 HP의 양을 조절하고, HP를 뇌로 운반하는 역할을 맡은 것도 갑상선 호르몬이다.

그리고 겨울잠의 주기성은 HP량의 주기적 증감에 의해 나타난다.

평상시의 치프멍크 혈액 중 HP량은 1mL당 60~70 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 그램) 정도인데, 이 양이 겨울잠을 자는 상태로 이행함에 따라 서서히 줄어들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 평상시의 10~20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 반대로 혈중 HP량이 원래대로 늘어나면 치프멍크는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따라서 '겨울잠을 잘 수 있는 상태'는 혈중 HP량이 줄어든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뇌 속에서 갑상선 호르몬 분비를 지령하는 곳과 HP가 작용하는 뇌의 부분을 규명하면 겨울잠의 신비는 한 꺼풀 더 벗겨지게 될 것이다.

◇사람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 이제 관심사는 사람도 일부 포유동물처럼 겨울잠을 잘 수 있느냐에 쏠린다.

인간게놈의 해독이 완료된 2003년 사람에게도 HP를 만드는 유전자와 비슷한 염기서열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부 과학자들은 HP와 유사한 단백질이 사람에게도 있으며, 그것을 이미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겨울철 울증'이라는 병을 앓는 사람도 있다.

겨울철이 되면 왠지 기운이 없고 활동성이 떨어지며, 이 시기에 앞서 탄수화물을 몹시 탐내는 등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이다.

이 질환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증상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겨울잠이 사람에게 응용될 수 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언젠가 '인공 겨울잠 장치'가 개발돼 암과 치매를 비롯한 각종 질병 치료에 쓰이고, 우주인들이 위험한 방사선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우주를 수년씩 여행하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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