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와 함께 하는 오후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훗날엔 무엇을 셀지 몰라

김준태 '감꽃'

▧돈을 세던 손으로 감꽃을 셀 순 없지, 그것은 배고픈 꽃, 배고픈 날 가만가만 주워먹던 꽃, 배고픈 그대 곁에 가을 봄 여름 없이 피어 있는 꽃, 소리 없이 숨어서 흐느끼는 꽃, 실에 꿰어 목에 걸고 장에 가신 우리 오빠 기다리던 꽃;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침 발라 돈을 세는 게걸스런 눈으로 피고 지는 감꽃 너머 그 하늘 청정을 헤아릴 순 없지. 그대 훗날엔 무엇을 세려하는가. 서산에 해 지고 가을 바람 스산한 이승의 끝날까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고 있다면 끔찍도 해라! 그것은 전쟁통에 죽은 병사의 머리보다 참혹한 일. 쓸쓸한 그대, 감꽃 지기 전에 하룻밤만이라도 산너머 저쪽 시인의 마을에서 묵어가기 바란다.

강현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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