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단 한편의 시도 쓰지 않고 살아,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어요.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사는 삶이 그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반성의 세월이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그려내 수많은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대구 출신의 정호승(54) 시인이 여덟번째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을 최근 펴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후 5년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다.
정 시인은 "늘 가슴 속에서 시를 쓴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지만, 실은 시인의 가슴속에 있는 시는 시가 아니다"며 "그 가슴에서 시가 문자의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어야 진정한 시의 제 모습"이라고 얘기했다.
이번 시집에 실린 74편의 시는 지난 5년간 메모 형태로 기록해 놓은 것을 지난 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집중적으로 다듬은 것이다.
이 가운데 25편은 최근 문예지 등에 발표한 것이고 나머지는 이번 시집을 통해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시대의 아픔과 상처받은 인간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세계를 펼쳐보였던 정 시인은 이제 독자들을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이 자신의 시에서 '고통'을 받을까 걱정하며 '쉽고 편안한 시'를 쓰는 단계에 이르렀다.
"독자들이 시를 이해하는데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쉽게 쓰려고 했습니다.
사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시를 읽으면서까지 고통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좀 더 고요해지고 싶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식물원에는/꽃들이 모두 인간의 눈동자다/나뭇잎마다 인간의 푸른 눈동자가 달려 있다/시각장애인들이 흰 지팡이를 짚고/더듬더듬 식물원으로 들어서면/나무들이 저마다 작은 미소를 지으며/시각장애인들의 손바닥에 하나씩/눈동자를 나눠준다'('시각장애인 식물원' 중)고 노래한 시편에는 동화적 상상을 통해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려는 시인의 맑고 따뜻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또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 '바닥에 대하여' '노인들의 냉장고' '걸인' '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 '갓난아기를 위한 장례미사' 등 노숙자, 홀몸노인, 걸인, 시각장애인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가 많다.
이에 대해 정 시인은 "인간의 삶은 비극성을 안고 있으며 그 속에서 시가 나온다"며 "비극이나 고통은 극복 대상이 아니어서 시를 통해 이를 껴안고 위안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그들의 삶을 시로 쓴다"고 했다.
등단 31년을 맞은 정 시인은 "시집 이름인 '이 짧은 시간 동안'은 우리의 인생을 뜻한다"며 "짧은 삶을 살면서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무엇을 잃고 살지 않았는지 혼자 묻고 혼자 답을 구했다"고 털어놨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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