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리생활 청산 새 인생 출발

"지나간 허송세월은 이제 다 잊어버려야죠. 나이 오십 줄에 진짜 인생이 시작됐으니까요".

중구 태평로 '구민교회 근로자의 집' 노숙자 쉼터에서 4년째 생활 중인 이인수(55)씨.

이씨는 공공근로를 마치는 오후 4시 30분이면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다른 곳은 달성군 화원읍의 '한남중학교'. 2년 과정인 여기에 그가 들어선 지도 벌써 3개월이 됐다.

이씨는 '1학년 3반'의 어엿한 학생이다.

"대학 다니는 조카 놈한테서 책가방을 얻었어요. 이유를 묻기에 '나, 중학교 간다' 그랬죠".

다가오는 중간고사가 걱정되고 영어.수학이 제일 어렵다는 '늦깎이 중학생' 이씨. 젊은 선생님 말씀에 따라 어색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만, '지각인생'을 만회하려는 욕심은 어느 학생 못잖다.

이씨는 몇 년 전까지 후회로 점철된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걸어왔다.

포항의 한 '깡촌' 출신인 그는 16세 때 대구로 무작정 올라왔다.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세상은 쉽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1년 가량 일했던 기계가공 공장에서는 프레스기에 손가락이 잘렸다.

가정불화 끝에 서른 넘어 결혼한 아내와도 지난 1993년 헤어졌다.

하나뿐인 아들은 이제 20대 초반이 됐을 것이다

이후 그의 인생은 만신창이가 됐다.

술로 지새는 날이 이어졌고 알코올 중독증세로 병원을 들락날락했고 돈있는 날은 하루 5천원짜리 여관에서 추위를 피했고 호주머니가 텅 비면 노숙했다.

그러다 지난 2001년 12월 우연히 노숙인 쉼터를 소개받아 이 곳에 왔지만 옛 생활에서 헤어나기 쉽잖았다.

그즈음 이곳 쉼터 주득원 실장 주선으로 '학교'를 다니게 됐다.

"이 나이에 학교를 다닐 수 있다니 처음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어요". 신앙과 학교생활로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북구 유통단지에서의 주차장청소 일을 마치고 나면 책가방을 들고 나선다.

큰 도시락을 아침, 저녁으로 반씩 나눠 먹는 일도 즐겁다.

하루 5시간의 수업뒤 밤 11시나 돼야 쉼터로 돌아오는 이씨는 공부할 시간이 적어 아쉽다.

동료 노숙인들을 위해 밤늦게 불을 켜 놓기가 미안해서다.

이씨 소원은 중.고교를 마치고 신학대학에 입학,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예전의 저처럼 희망을 포기한 채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직 새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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