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장인가(匠人家)의 '명품(名品)' 조건은 까다롭다.
장인이 만들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공품이어야 한다.
적어도 5대 이상 이어온 가업에서 나오고, 제품에 일련 번호와 함께 '족보'가 붙어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다는 이력은 중요하지만, 제조 비법이 공개돼선 안 된다.
이 같은 조건만큼이나 그 유례도 갖가지다.
귀족이 주문해 쓰던 생필품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고, 악기 제작 명문가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고 못사는 명품은 다 유명 브랜드와 유명 메이커 제품일 따름이다.
게다가 그런 명품 열풍 때문에 '짝퉁(가짜 명품)'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가짜는 진짜로 보이고, 진짜는 가짜로 보인다'면 과장이기만 할까. 조화(造花)를 보고 생화(生花)로 착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때문인지, 거꾸로 생화가 조화로 보여 만져보거나 향기를 맡아보고 실소(失笑)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착각도 뜬금 없지만은 않다.
가짜일수록 되레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가 발휘(?)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달궜던 '명품 신드롬'이 경기침체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불붙어 '짝퉁과의 전쟁'이 뜨거운 모양이다.
지적재산권 침해와 관련한 통상압력과 특별단속반의 가동에도 서울의 일부 짝퉁 가게들에는 '단속을 비웃는' 행렬이 성시를 이루고, 소비자들의 허세와 상인들의 현금장사가 맞물리고 있다고 한다.
경찰이 지난 한 달간 상표법 위반으로 단속한 건수만도 799건이나 된다니 기가 찬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루다외는 '희귀성이야말로 소비심리의 본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명품 신드롬은 '남과 달라 보이기'와 '티내기'가 기본이다.
내용보다는 겉치레, 실리보다는 명분이 그 요체인 셈이다.
내면을 가꿔주는 서점은 갈수록 한산해지는 반면 얼굴과 몸을 가꾸는 성형외과나 헬스클럽이 번창하는 까닭도 '간판 문화'와 연결돼 있다.
심지어 취직이나 결혼 때도 능력이나 인품보다는 간판과 외모를 더 중시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는 세태다.
▲명품 신드롬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하염없이 '짝퉁'을 부를 수밖에 없다.
사회가 요구하고 소비자가 찾으니 가짜가 줄을 잇고, 능력이 따르지 못하는 계층조차 명품을 추구해 우리 사회가 '가짜 천국'이 돼 가는 건 아닐는지…. 아무튼 사회병리학적 현상이자 집단 콤플렉스로 보여지기도 하는 이 신드롬의 이면에 뿌리박은 열등감과 보상심리를 벗어나야 '제대로 된 사회'가 올 건 자명한 사실이다.
가짜가 진짜로 보이지 않고, 진짜가 가짜로 보이지 않는 사회는 언제쯤 도래할 건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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