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갈구하지만 막상 그 행복이란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어둑하고 외로운 곳에서 불쑥 던져지는 것도 아니요, 마술의 기적에서 일어나는 신비도 아니고, 송편 빚듯 손가락 놀리며 만들어 얻어지는 것 또한 더더욱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무언가 모자란 듯한 허전함으로 늘 목이 타는 사람, 평생을 뼈빠지게 고생해도 돈은 나를 피해가기만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죽이며 아프게 사는 사람, 다른 사람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혼자만 철저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들의 행복에 대한 욕구는 정말 한도 끝도 없다.
몸에 알맞게 먹으려면 조금은 배가 덜 차게 먹어야 하고 마음에 알맞게 생각하려면 소박하게 마음을 써야 하거늘 온갖 욕심으로 숨막히게 채워 둔 우리의 내면에서는 그러고도 모자라는 고통으로 할떡거리며 불행이라는 단어의 꼬리를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사실은 그런 불행의 푸념 속에 진정한 행복이 들어있다는 거다.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빈 손의 위용을 자랑하는 저 넉넉한 품의 산과 같이 행복이라는 얄미운 놈은 말을 안 하기 때문에 옆에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빈 손인 듯 허전하지만 늘 손 닿는 곳에 있어 우리가 조금만 접근하기를 원하면 언제 어디서고 손을 잡아주는 기특한 녀석임에 틀림이 없건만….
가까이 모시던 선생님 한 분이 계신다.
그 분은 어른을 모시는 집의 며느리이면서 엄마며, 또한 한 남자의 아내며 많은 학생을 지식의 길로 인도하는 교직자이셨다.
그러면서 또한 좋은 신앙인이셨다.
그 분의 하루는 그야말로 일 분의 여유도 없는 나날이었다,
심지어는 일요일까지 종교인으로 빼앗기고 난 후의 남은 시간마저 일주일 밀린 일까지 다해 내어야 하니 1년 365일을 하루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고된 생활의 되풀이를 하시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분주하게 사시면서도 늘 강인해 보이시던 그 분이 형편없이 나약한 어깨로 눈물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시대 좋은 문학인으로, 훌륭한 직장인으로 칭송받던 선생님의 부군께서 건강에 사형선고를 받으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내 이 졸필로 어찌 다 옮길 것인가.
늘 소녀처럼 웃음이 많으시고 다정다감하시던 선생님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눈만 뜨면 가족의 건강한 얼굴을 보고, 날 기다려주는 학생들 곁으로 가서 그 갈구하는 눈망울들에게 내가 넣어줄 수 있는 향기를 주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찬거릴 사 들고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사람냄새를 맡을 때가…… 지긋지긋하던 그때가……".
내 눈에서도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헛된 욕망과 찌든 위선으로 분칠을 하여 내게 주어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치는 행복을 느끼지도 못하고 쓸쓸하고 쫓기는 기분으로 물질의 노예로만 군림하고 있었던가? 그러면서 자기 보호주의에만 빠져 옆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자신을 혹독하게 고문한 날이 많았었던가.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아낌없이 주는 한 그루의 나무에게서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사랑을 키워가는 한 소년의 행복을 오늘 나는 겸허하게 본다.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듯 나약해진 이 분께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그토록 큰 배움의 은혜를 입고도 입은 천근이고 눈물만 쏟아지고 있으니…….
메말라 버석거리는 가랑잎처럼 떨고만 앉아 있는 그 분의 어깨 위로 찻집에서 흐르는 카펜터즈의 'Yesterday Once More'가 오늘 더 깊이 날 끌어안고 있는 이 시간, 행복이란 녀석을 긴급 수배해서 선생님 앞에 다시 앉혀 드리고 싶다.
박주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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