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기듯 일하면 오래 삽니다

"마을에 들어오는 젊은 사람도 없고, 지난 475년간 자손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수년안에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김천시 구성면 상거리 속칭 저익촌 마을. 이곳엔 29가구 60여명의 주민들이 벼농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마을을 감싼 덕대산 4부 능선쯤 해발 260m 고지에 자리잡은 이곳 마을은 산수가 좋고 다락 논이 대부분이어서 주민들은 즐기듯 농사일을 하고 공해없는 음식 덕분에 모두들 장수하고 있다.

평균 연령은 80대 초반. 최고령인 김남규(94) 할아버지와 최차수(84)할머니 부부를 비롯, 김진용(91).이기순(93)씨 부부 등 구순 넘은 부부가 3쌍, 팔순을 넘긴 부부 3쌍, 칠순 넘은 부부가 6쌍 등이며 나머지는 혼자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모두 칠순을 넘겼다.

지난해 10월 김상한(54)씨가 서울 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귀향, 농사를 짓고 있으나 아직 가족들이 이사를 하지 않았다.

구순의 부부들을 비롯 이곳 주민 대부분은 현재까지도 열심히 농사일을 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처형당한 사육신중의 한분인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선생의 후손들로 모두 김녕 김씨 단일성을 가진 일가들이다.

백촌 선생의 증손 김숙련(金淑蓮) 선생이 고향인 옥천군 이원면에서 야반도주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들의 삶이 시작됐다.

세상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삶을 살아간다는 뜻에서 마을 명칭도 저익(沮溺)촌으로 붙여졌다.

현재 제실로 이용하는 승유제(承裕齊)는 주민들을 교육하는 서당 역할을 톡톡히 해 은닉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17대째 이곳에 사는 김상달(78).최용식(77)씨 부부는 "우리도 적잖은 나이이지만 이곳에선 자네로 불리고 있고 농사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구순의 부부들이 거뜬히 농사일을 해내 우리가 힘들다고 꾀를 피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옛 어른들 말씀에 마른 배(버스)가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이 망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라고 했다.

귀향한 김상한씨는 "역사 깊은 장수 마을이 좋아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했다"며 "마을이 경사도가 심한 산 중턱에 위치한 탓인지 주민 대부분은 허리가 심하게 굽어 늘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사진: 구순을 넘긴 김진용·이기순씨 부부(앞줄)와 김상달·최용식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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