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들어 나라 안 거리의 모습이 바뀌어졌다.
횡단보도나 교차로 앞에서 정지선을 지키며 나란히 서 있는 차량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목적지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으로 하루 운동량을 삼는 나로서는 이 변화가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선진인가 아닌가의 구별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거리의 차량질서를 지켜보는 일이다.
도로의 사용주체는 차량과 보행자일텐데 이 두 주체 사이의 행동의 양태에 따라 문화의 등급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도나 중국의 도로 위에서는 차량과 인파가 함께 뒤섞인다.
보행자는 보행자대로 차량은 차량대로 각기 제 길을 부지런히 찾아가는 것이다.
혼돈 속에서도 제 방향을 찾아가는 이러한 모습이 여행자에게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이 자체를 고급한 문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시골 도로 위에서 가끔씩 달구지 같은 구시대의 유물을 만날 때가 있다.
편도 1차로인 이 도로 위에서 대부분의 차량들은 속도를 줄인 채 달구지 뒤를 천천히 따른다.
도로 위의 경찰관들에게 왜 달구지의 통행을 막지 않느냐 물으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이 길은 저들의 길이었다는 답변이 따른다.
관습적 사용의 우선권을 인정한 것인데 이 생각의 바탕에는 사회적 소수자인 상대방의 입장을 우선 배려하는 마음이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문화의 고급성 비고급성의 여부는 바로 이 점에 있다 할 것이다.
상대방을 철저히 배려할 수 있는 마음.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인 문화의 등급이 눈에 환하게 빛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시절 우리의 거리에 나타난 문화의 모습은 결코 선진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교차로에 뒤엉킨 차량들. 그 사이를 비집고 횡단도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커다란 덩치의 화물차들이 작은 차량들을 밀치고 달리는 도로의 모습 속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황기에 6만원의 힘'이라는 언론의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우리사회가 힘든 시절에 누군가를 배려하는 작은 기준을 도로 위에서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 정지선 지키기의 모습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문화의 힘을 이야기 할 때, 우리나라의 도로 위에 펼쳐지는 아쉬운 풍경 하나가 있다.
'춤추는 관광버스'가 바로 그것이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음주가무를 하는 모습은 확실히 정상적인 풍경은 아닐 것이다.
혐오감과 함께 교통사고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음주가무의 주체에 있다.
이들은 대부분 농어촌 주민들이거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려는 소시민들이다.
이들에게 관광버스 여행은 일년에 한두 번, 혹은 생애에 걸쳐 단 몇 차례에 있는 소중한 휴식의 시간인 셈이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거나 호화 크루즈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들이 모처럼 삶의 한적한 시간에 관광버스 여행을 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일견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는 것이다.
정지선 지키기에 이어, 춤추는 관광버스에 대한 단속이 다음달부터 이루어진다고 한다.
필요한 단속이지만 도시민들이 고단함을 잊고 사회적 소수자인 이들의 여가활용 방식을 우리가 충분히 고려하고 단속에 들어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데 통일호나 무궁화 호의 일정 차량을 지정하여 춤추는 관광열차로 운행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힘이 약한 소수자를 더욱 따뜻이 껴안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들 속에서 문화의 꽃밭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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