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자리라면 언제나 목 놓아 부르는 동요 '우리의 소원'. 지난 2000년 6월 15일.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던 그 자리에도 '우리의 소원'은 어김없이 울려 퍼졌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60년. 동요 '우리의 소원'이 지닌 현대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EBS는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을 기념해 15일 오후 8시 50분부터 특집 다큐멘터리 '통일의 노래, 겨레의 노래'를 방송한다.
동요 '우리의 소원' 이 통일을 염원하는 겨레의 노래가 되기까지 숨겨진 뒷이야기와 그 뒤에 숨겨진 현대사의 질곡을 짚어볼 예정. 여기에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이 곡의 작곡가 안병원의 생생한 증언이 더해진다.
'우리의 소원'은 1947년 중앙방송국(현 KBS 전신)이 방송한 3.1절 특집 노래극의 삽입곡으로 만들어졌으며 원제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당시 중앙방송국에선 영화인, 연극인, 언론인으로 이름난 안석주에게 대본을 의뢰하고 그의 아들 안병원에게 이 노래의 작곡을 맡겼다.
1948년, 남한만의 임시정부가 꾸려지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이승만 정권은 이 곡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싣고 전 국민이 부르게 한다.
이후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면서 이 노래는 네 차례나 수정이 되고서야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1970년 중반에는 교과서 속의 '우리의 소원'이 민중가요로 불렸다.
긴급조치9호가 발동되고 금지곡이 되는 노래가 많아지자 대학가에서 이 곡을 개사해서 부르기 시작한 것. 그러던 중 1989년 임수경이 제13차 세계 청년학생축전에 남측 대표로 참가해 '우리의 소원'을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2000년 6월 남북정상이 한 자리에 앉게 된 역사적인 자리에서 남북대표들은 하나가 되어 '우리의 소원'을 부름으로써 이 노래가 겨레의 노래가 되었음이 입증된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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