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억년 전, 지구를 활보하며 휘젓고 다니다 사라진 공룡을 비롯한 고생물의 모습을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화석 덕분이다.
그러나 화석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뼈와 껍데기 등 단단한 조직 뿐이기 때문에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겉모습이 전부다.
따라서 육상동물의 경우 발자국 등의 또다른 화석을 통해 보행 속도와 보행 형태 따위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발자국의 흔적조차 남길 수 없는 해양 고생물의 생태는 섣부른 추론조차 어렵다.
그렇다고 과거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좌절된 것은 아니다.
물리학적인 분석과 계산에 입각한 유체역학에다 컴퓨터 디지털 기술이 고생물학에 접목됨으로써 고생물의 모양과 움직임, 진화의 요인을 밝혀 내려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노말로카리스=일본 가나가와대학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갑자기 풍부한 화석이 출연하기 시작한 5억7천만년 전인 '고생대 캄브리아기'. 당시 캐나다 지역에 서식했던 동물군은 5개의 눈을 가진 '오파비니아', 튜브 모양의 몸통에 가시가 많이 난 '할루키게니아', 새우와 같은 모양의 더듬이와 여러 개의 지느러미를 가진 '아노말로카리스' 등 기묘한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이들의 화석은 산지 부근에 있는 산의 이름을 따서 '버지스 혈암 동물군'으로 불리고 있다.
혈암은 물 밑바닥에서 굳어진 진흙으로 이루어진 암석의 일종이다.
가나가와대학 연구팀의 관심은 이 중에서도 특히 머리의 앞쪽 끝에 가시 달리 다리 같은 것이 2개 있고, 아주 사나운 입과 여러 개의 지느러미가 달린 가늘고 긴 몸통을 가진 '아노말로카리스'에 쏠렸다.
버지스 혈암 동물군 중 가장 큰 50cm의 크기를 가졌고, 생태계의 최강자로 군림한 포식자로 매력(?)을 가진데다, 북아메리카 대륙과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동유럽 등지에서도 화석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석이 남아있지 않은 한 고생물학은 아노말로카리스의 조상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유체역학을 바탕으로 한 물리모델은 고생물학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게 해준다.
아노말로카리스의 가늘고 긴 몸통을 얇은 직육면체로, 지느러미를 납작한 판으로 각각 가정한 물리모델을 설정할 경우, 가장 유력한 아노말로카리스 조상의 모습은 전형적인 절족동물인 지네와 같은 가늘고 긴 지느러미를 가진 형태가 된다.
지네처럼 생겼던 조상이 화석에 나타난 아노말로카리스로 진화하면서 유영 능력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아노말로카리스 최초 조상의 지느러미 폭을 3cm로, 아노말로카리스의 지느러미 폭을 7cm로 가정했을 때, 3~6cm 단계에서는 지느러미 폭이 1cm 넓어짐에 따라 유영속도는 초당 10cm씩 빨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3cm일때 초당 10cm속도에서 6cm에서는 초당 40cm의 속도를 냄). 그런데 지느러미 폭이 7cm가 되면서 유영 능력이 크게 향상되어 초속 90cm나 됐고, 에너지 소모량은 6cm일 때와 비슷했다.
아노말로카리스는 환경에 적응, 진화하면서 자신이 가진 체형으로 가장 효과적인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오늘날의 가오리와 흡사한 유영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모사사우루스=약 2억4천만년전 공룡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바다를 보면, 몸길이가 14m에 이르는 거대한 해양 파충류인 모사사우루스류를 만나게 된다.
틸로사우루스 프로리게르 등이 포함되는 모사사우루스류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납고 강대한 머리와 바다뱀처럼 가늘고 긴 몸을 지니고 있다.
모사사우루스류의 바닷속 생활 모습도 유체역학에 기반을 둔 물리모델로 엿볼 수 있다.
일본 가나가와대학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모사사우루스는 몸을 구부려 초속 1m 정도로 천천히 헤엄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앞뒤로 모두 4개의 지느러미를 갖고 있지만, 이 지느러미는 헤엄치는 데 사용되기 보다 방향 전환용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체역학의 이론상 모사사우루스 같은 바다뱀 유형은 몸길이가 길어지더라도 일정 속도까지밖에 유영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다.
이제 모사사우루스의 생태도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다.
모사사우루스는 별로 헤엄치며 돌아다니지 않고, 기다렸다가 가까이 다가온 먹이를 덥석 물어뜯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게다가 해양을 돌아다니기 보다 한 곳에 머물며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과 고생물학의 만남= 생물은 단순한 기능에서 차츰 기능 수준을 높이면서 미미하게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또 일반적으로 생물이 화석이 되어 남겨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
따라서 기능적으로 최적화된 형태를 획득함으로써 폭발적으로 번성했을 때, 비로소 화석으로 남겨질 수 있는 개체가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에서 화석 연구에 집중하는 고생물학의 한계가 나타난다.
고생물학 뿐만 아니라, 생물학 물리학 등 다양한 영역이 서로 협력해야만 화석으로만 볼 수 있는 동물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고, 화석으로도 볼 수 없는 '잃어버린 연결고리' 상의 생물의 창조도 이루어 질 수 있는 셈이다.
지금도 '디지털 로스트 월드 계획'에 따라 일본 가나가와대학 요코하마 캠퍼스에 설치된 '버추얼리티 센터'에 가면, 아노말로카리스, 익티오사우루스, 모사사우루스 등의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을 대형 스크린에 투영된 컴퓨터 그래픽으로 즐길 수 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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