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6.25의 상흔이 깃든 다부동 유학산

경북 칠곡에는 해발 839m 높이의 그리 크지 않은 산이 있다.

학이 놀았다고 유학산이라 부른다.

학이 놀던 산, 이름 만큼이나 아름답고 사철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그러나 이곳은 6.25 전쟁때 조국 수호의 보루가 된 다부동 전투의 현장이다.

유학산에는 6.25전쟁을 상징하는 6.25km의 등산로가 있고 그 초입에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다.

찌는 듯한 더위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면 등줄기에서 땀이 쫙 흐른다.

등산객들은 연신 목을 축이며 오르지만 그때 참전용사들은 어떠했을까.

가슴에 주렁주렁 수류탄을 달고, 들기조차 버거운 M1 소총을 들고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비탈을 오른 그들을 상상하면 힘들다기보다는 끔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오늘 우리는 막연히 그날의 고통을 상상하지만 그들은 조국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이 산을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렸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아름다운 산에 자신의 생명과 육신을 두고 떠나갔다.

대신 우리는 조국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오늘을 살고 있다.

이제는 그들의 고마움을 한번쯤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그런 호사스런 대가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이름 없는 영혼이 되어 묵묵히 조국산하를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다.

6.25km의 등산로를 걷다보면 붉은 산딸기가 소담스런 모습으로 무심한 등산객을 맞는다.

붉디 붉은 산딸기는 그날의 한 서린 핏빛 같고 유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시들어 가는 억새풀들은 그날의 목마름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839고지를 떠나 674고지로 이어지는 능선 양편에는 유해발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반세기 동안 그들의 육신과 영혼이 머물렀던 그 구덩이엔 낙엽만 쌓여있다.

그리고 작은 팻말 하나가 그들의 존재를 이야기 해준다.

'유해 발굴지점(#15) 유해 2구 206점, 유품 264점'. 여기 작은 구덩이에 머물러 있던 영혼들은 그들의 유해와 함께 이제야 안면의 길을 떠났을 것이다.

무심한 등산객들이여 유월에 유학산을 찾거든 등산로 양편에 참호같이 늘어서 있는 작은 구덩이들을 한번 더 눈여겨보자. 그들이 이불처럼 덮고 있던 낙엽더미도….

배상도(칠곡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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