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나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생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형이 나가 싸우고, 부모는 부모대로 흥분하는 게 우리네 풍속이고 인지상정인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해외 어학연수에 대해 취재하다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에 영국으로 어학연수 간 한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여 현지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한 어린 학생이 맞고 들어오자 애국심(?)이 발동한 큰 녀석들이 와르르 달려나가면서 빚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직관이나 감정에 따라 생각지 못했던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절절한 진심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진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성숙하지 못한 자세와 합리성의 부족에 실망하는 때도 있습니다.

위의 사례라면 어떤 시각이 맞는 걸까요.

비슷한 사안이 요즘 온 나라를 뒤덮고 있어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라크에서 피랍된 김선일씨가 무참히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네티즌들 사이에 파병 찬성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고, 심지어는 보복이나 대규모 전투병 파병 등의 주장이 번진다는 얘기에 망연할 뿐입니다.

이라크 파병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한 사람의 죽음에 많은 국민이 충동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은 대단히 우려할 일입니다.

그의 죽음이 억울하고, 너무나 슬퍼, 분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감정으로 전쟁이나 파병 같은 엄청난 사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뒤집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철학과 가치관이 얼마나 빈곤하고, 교육은 또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엄밀히 말해 우리의 학교 교육은 결론과 정답을 요구할 뿐 그에 이르는 과정이나 절차에 대해서는 관심이 극히 부족합니다.

사색과 토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문제집과 모의고사가 버티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대신 주입과 암기가 횡행합니다.

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일부 과목에 국정 교과서가 여전히 존재하고, 상부 기관의 공문 한 장에 교육과정이 흔들리며, 정책에 배치될 경우 평화에 대한 교사들의 자율적인 수업조차 금지되는 게 학교의 현실입니다.

정권의 입장에서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치명적인 독소들입니다.

교육에 드리운 권위주의와 행정 편의주의의 짙은 그림자를 걷어내지 않는 한 우리 국민들은 언제나 양은냄비처럼 금세 끓어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리기를 되풀이하는 이류 국민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안타까운 일입니다.

온 국민이 촛불을 켜며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함께 슬퍼하되 혼자 되는 내면의 밀실에서는 합리성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 그런 국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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