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한국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던져진 가장 고통스런(?) 과제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 겪어야 하는 괴리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유아 때부터 혀 굴리기 연습을 하고 초등학교 내내 회화에 매달리지만 중학교 진학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점수 따기 영어, 즉 문법 중심 영어에만 관심을 쏟는다.
우리 교육 현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이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불만 터뜨리기보다는 눈앞의 현실이 급하다.
회화 영어와 문법 영어를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유아와 초등학생 중심 학원의 부원장 정원철씨와 중.고교생 대상 학원장 임대식씨, 대구외국어교육협의회 김병직 회장 등과 장시간 토론해 봤다.
◇문법 영어에 눌리는 엄마들
문법 영어에 대한 학부모들의 강박 관념은 생각 이상이었다.
정원철 부원장은 "얼마 전에 일곱 살 아이를 둔 학부모가 상담하러 왔는데 대뜸 '회화 영어가 중학교 성적이나 입시에 현실적으로 맞느냐'며 어떻게 가르치는지 물었다"고 했다.
김병직 회장은 "부모들은 회화를 아무리 잘 해도 spell 하나 틀리면 실망한다.
원어민과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가 Okay를 Okey로, sorry를 sory로 쓰기라도 하면 학원을 옮기려 든다"며 혀를 찼다.
임대식 원장은 "중학교에 가면 sorry가 실제 문제로 나오기 때문에 부모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일찍부터 대비하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정 부원장은 "외국에 유학 가서 1, 2년씩 있어도 잘 안 되는 게 외국어다.
절대적인 투자 시간이 턱도 없이 못 미치는 국내에서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학부모들이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흔들리면 손해 본다
학원가에서는 초등학교 3, 4학년만 되면 회화 영어 중심 학원에서 문법 중심 학원으로 이동이 시작된다고 한다.
6학년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대부분이 문법 중심의 중학교 대비반에 등록한다.
문제는 너무 일찍 옮겨가서는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것.
김 회장은 회화 학원에서 상위권 수준에 들던 한 학생의 사례를 들었다.
"4학년 때 갑자기 학원을 옮기더니 결국 1년 후에 돌아왔습니다.
문법 중심 학원에선 영어를 공부로 받아들여 하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단어와 문법 공부는 좀 했는지 읽기와 쓰기는 어느 정도 되는데 듣기와 말하기는 초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교육 시장은 철저한 경쟁 구조다.
당연히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강조하며 학부모들을 유혹한다.
주관을 잃고 여기저기에 흔들리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 부원장은 "부모가 여러 교육방법의 장단점을 파악해 나름대로 일관된 자세를 갖고 교육시켜온 애들은 확실히 뛰어나다"고 했다.
최근에는 회화 학원들도 학부모들의 요구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우리말로 된 문법 교재를 쓰거나 문법 교육을 하는 추세다.
이 역시 주의해야 한다.
임 원장은 "초등학생 대상 학원에서 쓰는 문법 교재 가운데는 단순히 학부모에게 보이기 위해 만든 것 같은 경우가 더러 보인다"며 학부모들이 교재까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흥미를 잃지 않아야 성공한다
어떤 과목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어인 영어는 흥미가 없으면 참으로 힘든 공부다.
회화 영어에서 문법 영어로 넘어가는 과정을 훌륭하게 이겨내고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학생들에겐 '흥미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회화 중심 학원들이 놀이나 생활 위주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갑자기 딱딱한 문법 공부를 시키면 영어 자체에 흥미를 잃기 쉽다"며 "단계를 한 번 잘못 선택하면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에 옮기는 과정에 어떻게 흥미를 지속시킬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정 부원장은 "어려서부터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를 균형 있게 가르치고 각 부분에 자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읽기는 좋은 완충제
어떻게 하면 회화에 이어 문법 영어도 성공할 수 있을까 물었더니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은 한결같이 읽기였다.
임 원장은 "회화를 몇 년씩 배우고 왔다는데 테스트해 보면 기본적인 독해도 안 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며 "독해가 되면 문법은 절로 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읽기 양이 모자라 독해력이 부족하면 문법 공부는 그만큼 지루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정 부원장은 "읽기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야 한다"며 "과거에 비해 좋은 교재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김 회장은 "책 읽기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를 느끼면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게 된다"며 "학부모 입장에선 책 읽기 방법만 제대로 알아보고 지도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길은 회화 단계에서부터 실력을 두텁게 쌓아주는 것이다.
외국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말하는 속도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그들만큼 책을 읽었다면 회화든 문법이든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학부모들의 조급증이다.
1, 2년 시켜놓고 성과를 기대하는 건 곤란한 일. 소문을 좇아 이 학원 저 학원 옮기는 것도 자녀에게 도움이 될 리 없다.
참을 인(忍) 세 번을 매일같이 써야 자녀 교육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영어 교육에도 당연히 해당된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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