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결국 그렇게 끝났다

결국 그렇게 끝났다.

전 국민의 간절한 애원도 헛되이 김선일씨는 차가운 주검이 되어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외교통상부와 정보부처가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다시 한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많은 업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가치가 없다.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존엄과 권익을 지키고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외교부의 근본 책무다.

외교부는 사실 그동안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일이 잦았다.

우리나라에 취업하려는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비자 장사'를 하고, 그러면서도 탈북 동포들은 외면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국군포로 출신의 탈북자가 영사관을 찾았을 때는 "당신 세금 냈어"라며 외면하기도 했다.

▨정보가 국력(國力)이라더니…

우리의 외교관들이 본국에서 오는 정치인이나 유력 인사의 환대에만 매달릴 뿐 현지에 사는 한국인이나 일반 여행객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교민이나 주재원, 유학생들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당연히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달려가기보다는 현지의 유력자나 국회의원에게 청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권하겠는가.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이 김씨의 피랍 사실을 곧바로 대사관에 알리지 않고 현지 직원과 변호사를 동원해 자체적으로 석방 교섭에 나선 것도 우리 외교관들의 이같은 고질적인 행태 때문에 비롯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다가 AP통신의 자회사인 APTN이 지난 3일 김씨의 비디오테이프를 입수, 외교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는 AP통신의 보도에는 외교부에 대한 실망의 수준을 넘어 아연해진다.

3일이면 김씨가 피랍된 지 불과 사흘 뒤이다.

이 때 외교부가 조금만 신경을 써서 이라크 대사관에 알아보라고 지시했어도 김씨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AP통신의 보도가 정말 사실이라면 도대체 외교부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 이의 사실 여부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우리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의무를 저버린 것인 만큼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우리 정보부처의 무능도 반드시 따져야 한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5월 탈(脫)정치, 脫권력화를 위해 국내의 정보·수사분야를 축소하고 국제 정세와 테러, 경제정보 기능을 강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국정원이 이번 사태때는 어떤 역할을 했나.

이라크가 어떤 나라인가. 이미 그 곳에는 우리의 서희.제마 부대가 있다.

또 추가 파병 이야기가 나온 것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보부처에서는 이라크의 상황을 미리 상세히 파악하고 어떤 저항세력과 테러단체가 있는지, 그리고 만약의 사태가 터질 경우 어떻게 이를 타개할지 사전에 준비해두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도 김씨가 피랍된 지 3주일이나 지나서, 그것도 납치범의 보도를 통해서야 알았다니 우리의 정보 능력은 한심하다기보다 아예 무능함에 두려울 정도다.

더욱이 김씨가 이미 피살된 시점에 대통령에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까지 보고하고, 그에 대한 판단 근거도 고작 현지 방송의 보도였다는 데는 말문이 막힌다.

'정보는 국력(國力)'이라고 했다.

국정원 스스로도 이렇게 내세운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이 지금 '세계 경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CIA의 막강한 정보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 나타난 국정원의 정보능력을 보면 '정보가 국력'이라는 구호는 우리에게는 엉터리다.

▨ 외교.정보 대수술해야

문제는 우리 국민에 대한 테러가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란 점이다.

우리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우리를 대상으로 한 테러가 또다시 해외 어디에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선일씨의 억울한 죽음은 참여정부에게는 분명히 큰 악재다.

그러나 안에서 깨진 쪽박, 밖에서도 깨진다고 자괴할 일이 결코 아니다.

김씨를 참살한 후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던 테러범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또다른 테러를 획책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 국민과 정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외교와 정보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번 일을 계기로 분명히 밝혀내고 대대적인 수술을 해서 다시는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또 그렇게 해야만 김씨의 원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영창(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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