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혀진 문화유산-들소리

30, 40년 전만해도 이맘때 쯤이면 농촌 들녘에서 농부들이 논매기나 김매기를 하면서 부르던 '농요'(農謠.들노래)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농기계가 전무했던 그 시절의 농사는 대부분 사람의 손이나 발품으로 이뤄져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들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산업화되어 가는 현대에서 농요(들노래)에 깃든 조상들의 삶과 애환, 서로 부대끼며 보듬었던 공동체와 이웃의 정, 그리고 힘겨움과 고통을 날려버렸던 신명과 흥을 어떻게 전승하고 이어야할지 숙제다.

▨구미 발갱이들소리

최근 구미시 지산동 발검(拔劍)들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는 '발갱이들소리'(경북도 무형문화재 27호)시연 행사가 열렸다.

'구미 발갱이들소리'는 구미시 지산동에 위치한 넓고 기름진 발검들을 배경으로 불려지던 노래.

이 노래는 불과 30, 40년 전만해도 흔히 불렀다고 촌로들은 기억한다.

하지만 기계농지화로 탈바꿈하면서 일꾼들의 들노래도 사라지게 됐고 이에따라 지산동을 중심으로 발갱이들 주변의 괴평리, 문성리 등 일대 70대이상 농민들이 발갱이들소리보존회를 조직, 전승에 노력해오고 있다.

1991년에는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으며 1999년 4월 비로소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체계적인 전승 분위기가 조성됐다.

40년전까지 발갱이들소리를 부르며 농사일을 했다는 이상춘(83.고아읍 계평3리)옹은 들노래에 대해서는 '고통과 힘겨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전국 어딜가도 비슷한 내용의 들노래들은 그렇게 농사일의 힘겨움과 허기짐을 달래고자 가슴 저 밑에서 토해낸 애환의 소리인 셈이다.

1970년대 이후 농촌지역에 새마을운동과 농기계도입 등 새로운 변화가 몰려오면서 들소리의 맥이 끊기기 시작해 이제는 아예 자취조차 찾을 수 없거나 일부 보존단체들만이 희미한 기억으로 전승해가고 있다.

'구미 발갱이들소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능보유자 백남진(白南震.81)옹을 비롯해 대부분의 보존회원들이 70대를 넘어서 전승문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나마 발갱이들소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토박이 소리꾼 이숙원(李淑遠.68) 조교를 비롯해 홍순민(47).배인호(43).강상복(42)씨 등 40대 전수장학생들이 지키고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1세대 소리꾼들이 사라지고 전승주체들이 생업에 쫓기는 현실적 어려움이 이들 보존단체들에게 남은 숙제다.

백남진옹은 전국에서 흩어져 전승되고 있는 대부분의 들소리가 이젠 1년에 한.두차례 공연과 시연에서만 불려지고 있는 '박제화된 전통문화'로 인식되고 있는게 안타깝다고 했다.

▨자인 계정들소리

경산시 자인면 계정숲 아래로부터 펼쳐지는 들판이 계정들이다.

이곳 농민들에 의해 불리어지던 다양한 농업노동요를 수집하고 재구성한 것이 '자인 계정들 소리'이다.

이 소리는 1996년 경산시의 날 기념 압독민요대전에서 자인면 대표로 출전한 이원준(56)씨 등 6명이 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던 모심기노래 등 농요 6마당으로 대상을 받았다.

이 소리는 권영철 박사와 경북대 김경배 교수, 영남대 고 김택규 교수, 자인노인회 김달수씨 등에 의해 민요를 추가 보완하여 이듬해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전국 익산)에 경북대표로 출전, 노력상을 수상했다.

이 소리는 또다시 1998년 제39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경남 밀양)에 출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이 소리는 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할 당시만 해도 선창자 6명과 후창자 74명 등 모두 80명이었다.

각종 농사꾼 복장을 한 소리꾼들이 꽹과리, 북, 장구, 징 소리에 맞춰 신명나게 춤을 추며 입장한다.

여러가지 농사일과 소리의 매듭을 알리는 목나팔(띵가)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총 11마당중 첫마당이 시작된다.

계정들소리는 농요로서의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

11마당의 그 구성이 자연스럽게 농사일의 모든 과정을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옛 전통의 모습을 잘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제초제 사용과 농기계가 농사를 짓는 요즘 농촌에서 이 소리를 부르거나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다.

따라서 자인단오-한장군 축제 때나 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선창자들의 나이가 대부분 70세 이상으로 후계자 양성이 시급하다.

황화식(69)씨는 "상 받을 때만 해도 계정들소리보존회원들이 80명이었으나 이후 하나 둘씩 떠나 요즘에는 연령대가 4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까지 모두 57명으로 줄었다"며 "배우려고 하는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승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소리 계승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자인출신 이상준(용성면 산업경제담당)씨는 "지금이라도 늦기전에 계정들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구미.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사진: 구미시 지산동 발검들판을 배경으로 불과 30,40년 전만해도 흔히 불렸던 '발갱이들소리' 시연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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