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욕심버리면 "영어가 즐겁다"

부모들이 겪는 영어스트레스

우리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영어 교육은 큰 짐이다.

특히 조기에 영어 교육을 시작하려는 가정에는 거대한 재앙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부모 자녀간은 물론이고 부부간 갈등까지 빚기도 한다.

초조하고 급해 하다 보면 엉뚱한 데서 시간과 돈을 허비하기도 한다.

◇갈수록 커지는 영어 스트레스

조기 영어교육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엄마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훨씬 커 보인다.

내놓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혀 있을 뿐이다.

특히 자신이 이미 오랫동안 영어 교육을 받았음에도 자녀 교육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가 안 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대표적인 스트레스는 경제적 부담. 영어 사교육 시장이 점점 커지고 고급화하면서 여기에 드는 비용이 가정경제를 뒤흔들 정도가 된 데 따른 것이다.

부모 입장에선 이웃 아이가 영어 유치원에 다니면 자기 아이도 보내고 싶어지고, 좋은 책이나 교재가 나왔다고 하면 사 주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들 하는 만큼 따라 하기도 힘든 게 요즘 가계 사정이다 보니 엄마들이 맛봐야 하는 자괴감은 보통이 아니다.

여기에 이웃 엄마들이 최신 교재 정보나 학원가 흐름 등 영어 교육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열등감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인터넷이나 영어전문 서점 등을 통해 정보 취득의 길이 열렸다고 하지만 어지간한 열성 아니면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많은 정보를 습득해 자녀를 올바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게 아닌지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부모가 힘들면 아이도 싫어한다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전문가들 말대로라면 하루 종일 여기에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시간을 배분해 책을 읽어주고, 테이프를 들려주고, 생활에서 가급적 많이 영어를 써야 하고…. "가장 좋은 영어 선생님은 엄마"라는 말만큼 엄마들을 힘들게 하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동기와 환경을 제공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부모는 당장 자녀가 영어 단어 한두 개만 알아도 박수를 치고, 영어 문장을 말하면 기뻐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 한 마디, 단어 한두 개를 아는 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해야 할 때 파고들 수 있도록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영어교육 방법론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부모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영어로 말하기'이다.

자녀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뭐든지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에, 그것도 입시 영어로 공부해온 부모가 생활 속에서 쉽게 영어를 구사하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말로 하면 훨씬 나을 것을 공연히 영어로 하려다, 말문이 막혀 답답해 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가 과연 영어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낳는다

임신 때부터 영어로 태교를 하고, 영어교육에 관한 갖가지 책을 섭렵하고, 글자도 못 읽는 아이에게 전집을 사 주고... 이런 부모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른바 '본전 생각'이다.

자신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노력했는데, 막상 자녀가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기대만큼 성취를 보이지 않게 되면 엄마들은 거의 절망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더 초조하게 되고, 이런저런 방법론에 솔깃해 자녀를 더 힘들게 하고, 자신도 더 괴로워지는 상황을 자초하기도 한다.

만만찮은 돈을 들여 구입한 책이나 학습교재도 '본전 생각' 나게 만드는 것들이다.

"아이가 싫어하건 말건 이만큼 돈을 들였고, 다른 사람들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한 번 해 보자"는 식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보다는 차라리 영어공부를 시키지 않는 게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억지로 시키는 공부만큼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건 없다.

흥미 없고 재미 없는 과정을 통해 던져지는 학습은 아이들의 머리에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지 못한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내려가 무엇을 재미 있어 하고 어디에 흥미를 두는지 파악한 뒤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패를 가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먼저 부담과 욕심을 버리고 즐겁게 영어를 대할 수 있어야 아이들의 공부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가정에서 길러줘야 할 것은 자녀의 영어 실력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자발성이라고 강조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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