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천하통일의 기초를 닦은 오다 노부나가(1534-1582). 수많은 전쟁을 통해 지방 무사세력을 병합해 나가던 그는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부하의 급습을 받아 혼노사에서 자결했다.
사건 전날 그를 만났다.
-일본에서 전국시대란 무엇입니까.
△1467년 오닌(應仁)의 난 이후 약 100년에 걸친 군웅할거 시대를 말합니다.
그 해 1월, 하타케야마의 상속다툼이 교토에서 전면전으로 비화됐습니다.
오닌의 난이 시작된 것이지요. 전국의 군웅들이 호소카와편(동군)과 야마나편(서군)으로 나눠 싸웠습니다.
이 싸움은 교토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1477년 다이묘들이 화의를 하고 귀국함으로써 11년 간의 전란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막부의 힘은 소멸한 다음이지요. 쇼군은 교토 일대인 야마시로국만을 차지한 보통 다이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막부권력이 실제적으로 해체된 셈이죠.
막부권력의 해체는 각 지방의 다이묘들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국시대의 시작인 것이지요. 이 시기에 무사들은 막부에 충성하기 보다 영토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도 물론 그 중 한 사람이었고, 당시 저는 오하리국 기요스성의 성주였습니다.
-어릴 때 언행과 행동이 이상하고 복장도 단정치 못했다면서요. 허리에는 늘 표주박을 달고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좀 바보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후계자로 지목받지 못했고 결국 동생과 후계자 문제를 놓고 전쟁을 벌였지요. 700명의 군사로 동생 쪽 군사 7000여명을 무찔렀습니다.
-일개 소국의 영주였던 당신이 전국 통일의 꿈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입니까.
△오하리와 미노 지역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비옥합니다.
풍성한 농산물 덕분에 경제력을 갖출 수 있었지요. 또 교토와 거리가 가까워 교토 진출이 다른 군웅들보다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성공은 무엇보다 개방정책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개 무사들은 새로운 땅을 점령하면 검문을 강화하고 철저한 통제를 시작합니다.
첩자들의 출입을 막고 반란을 차단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저는 신도시를 건축하고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도록 했습니다.
세금을 철폐하고 관의 구속을 과감히 없앴습니다.
도시를 옥죄면 첩자와 반란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인들이 사라지고 결국 도시가 죽습니다.
개방을 통해 첩자들이 제 영토에 침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첩자들이 약화시킨 도시의 힘보다 자유롭게 왕래한 상인들이 도시에 훨씬 더 많은 활력을 주었고 그 활력이 곧 저의 힘이 됐습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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