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이제는 지상의 바람을 함께 호흡할 수 없는 한 젊은이의 이름 앞에서 우리는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느낀다.
젊은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생의 꿈을 지녔다.
목회자가 되어 세상의 힘든 영혼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꿈이 그것이다.
젊은이는 스스로 번 학비로 대학원에 가고자 했고 기꺼이 전쟁 속의 이라크 땅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AP통신이 전하는 필름 속의 젊은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
아마도 구금 초기였을 것이다.
필름 속의 그는 진솔하고 당당했다.
이라크 국민은 친절하며 이라크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다.
가난한 이라크 사람을 위해 도움을 준적도 있다고 말했다.
석유를 위해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젊은이다운 주장을 폈고, 그런 점에서 미국과 부시 대통령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펼쳤다.
배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침침한 화면이었지만 이 젊은이의 얼굴 표정에서는 세상에 대한 자기 신뢰와 따스함이 무한하게 풍겨 나왔던 것이다.
필름이 제작된 직후 AP통신은 한국 외무부에 김선일이라고 하는 젊은이의 피랍 여부를 물어왔다.
전화를 받은 외무부의 직원(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한다.
보도에 의하면 상부에 보고된 흔적도 없다.
유력한 외국 통신사로부터 자국민의 신상에 대한 첩보가 들어왔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덮어버렸다는 사실은 국가 기관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역으로, 어디 이러한 정보가 없는지 두루두루 살펴야 하는 입장으로서 말이다
10년 전 필자의 중앙아시아 여행이 생각난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알마티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국영 항공사 창구 직원들로부터 내일 오라는 말만 거푸 들었다.
현지인들로부터 15일 정도는 계속 여행사에 나가든지 뇌물을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흘을 공친 나는 결국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모스크바로 급히 나가야 하는데 표를 구할 수가 없다.
도와줄 수 없는가? 대사관 직원의 답변이 들려왔다.
대사관은 여행자들 비행기 표 끊어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와 나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맞는 말이다.
비행기 표는 여행사에서 끊는 것이니까. 그런데 구소련이 붕괴된 직후 그 나라에는 여행사가 없었다.
선교사들을 빼고서는 우리나라의 여행자를 찾을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겠는가!
여행 중에 만난 선교사들은 내게 이런 얘기도 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으면 꼭 일본인이라고 해라. 내용인즉, 일본인 여행자를 어떤 마피아들이 공격하게 되면 일본 대사관에서 그보다 더 힘을 지닌 마피아를 고용해 일본인을 공격한 마피아를 혼내준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밥이 된다고도 했다.
이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 해외에서 자국민이 불편부당한 경우를 당했을 때 이에 대한 최우선적 보호는 해외 공관이나 외무부의 직접적인 임무가 아니겠는가.(대사관은 여행자의 비행기 표 끊어주는 곳이 아니라는 똑똑한 답변에 대해 내가 끝없이 분노했던 이유도 여기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여행자가 같은 경우로 대사관에 전화했을 때 어떤 답변이 돌아왔을지…)
이라크 대사관에서조차 김선일 씨의 피랍 여부를 초기부터 알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또한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국민의 신변 이상을 현지 공관에서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공관이 존립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피랍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이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김선일. 그의 이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나라 안 곳곳에서 촛불 한 자루씩을 들고 그의 넋을 추모한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힌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힘든 시절을 살아온 모든 한국인들은 그의 젊은이다운 꿈과 못다 핀 넋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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