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탈북자들의 脫南, 여기가 북한인가

지난 97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했던 미사일 기술자 부부가 미국에 밀입국, 망명 신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남편은 지난해 미국 상원에서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해 증언했던 인물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문제의 남자는 군수공장 노동자이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자 대우받으려는 속셈에서 미국으로 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결코 예사롭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망명신청자가 미사일 기술자냐, 군수공장 노동자냐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망명의 이유가 "지난해 상원 청문회 참석 이후 한국 당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졌다"라는 사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북한을 의식해 '연금'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던 황장엽씨의 경우를 참고해볼 때 개연성이 충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탈북자들의 미국 대기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는 현지 소식도 언급의 신빙성을 높이는 일이다.

탈북자들의 탈남(脫南)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미국 상하 두 명의 의원은 최근 탈북자가 미국에 난민이나 망명 신청을 내는 데 한국 국적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탈북자가 북한뿐 아니라 남한 정권으로부터의 보호대상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남북관계의 '이상한 진전'으로 탈북자들에게 남한은 북한과 비슷한 종류의 정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자유와 민주, 평화를 3대 통일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국가의 이념적 우월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 이후 우리 사회는 이념적 퇴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려다 우리만 북한을 닮아가고 있는 꼴이다.

간첩을 민주화인사로 둔갑시키고, 탈북자 인터넷 방송을 협박하는 등의 반민주적 사건들이 예사로 일어난다.

탈북자들의 탈남은 이런 이념혼란의 산물이다.

이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불안과 근심이 높아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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