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대학이 서쪽으로 가면 우리는 동쪽으로 간다.
" 노벨상 수상자를 네명이나 배출한 일본 교토(京都)대학이 추진해 온 대학 특성화의 모토이다.
세계적인 명문 프린스턴대학에는 의대와 약대'수의대'농대'법대가 없다.
프랑스의 파리4(소르본)대학에는 인문과학과 수학'음악분야만 있고, 6대학과 7대학은 자연과학 위주이다.
국제적인 권위의 '개구리연구소'가 있는 일본의 히로시마(廣島)대학은 생태와 DNA'신약'환경분야에 특성화되어 있다.
난산(南山)대학은 종합정책'수리정보 학부를 신설하고 인문'외국어학부를 재편했다.
독일의 베를린공대는 22개이던 학부를 8개로 줄였고, 훔볼트대학도 22개 학부 중 절반을 없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너도나도 유사한 학과를 백화점식으로 개설하면서 양적 팽창에만 치중해 왔다.
그 결과 고비용 저효율 체제로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4년제 대학만 20개 가량이 난립하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은 특성화와 구조개혁이란 고단위 처방 없이는 많은 대학들이 머잖아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21일 파산을 선언한 일본 센다이(仙臺)지방의 도후쿠(東北)문화학원대의 사례는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대학들에게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의료'복지분야 특성화 대학인 일본 복지대의 유재상 복지경영대학장은 "한정된 대학의 경영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대학의 존폐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입학 정원이 고3 학생 수보다 많은 '정원역전 시대'에 지역대학의 생존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대학마다 학과(학부)를 절반 정도는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성화 분야를 서로 인정해 인근대학과 단과대학을 교환하며 공멸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지역대는 아직도 답답할 게 없다는 모습이다.
대학들이 밀집한 대구권의 경우 특성화가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위기의 목소리만 이따금씩 제기할 뿐 구체적인 변화 움직임은 미약하다.
대구'경북은 다른 지역의 통합 움직임에 대해서도 둔감하다.
경상대(농업중심)와 창원대(공업중심)간의 통합이 추진되고 있고, 부경대와 해앙대간의 통합도 논의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과 대전'충남지역에서도 국립대의 권열별 연합대학을 추진하는 등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보이고 있으나 지역에선 외면하고 있다.
겨우 지역의 거점대학인 국립 경북대가 정부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추진을 앞두고 컨소시엄 구성을 고려하고 있는 정도다.
아직은 실무자간의 구상에 불과하지만 영남대'계명대 등 지역의 법과대학은 물론 제주대 법대와 외국의 법과대도 참여하는 국제적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경북대는 또 농과대학 통합의 모델로 '경북 농업생명산업 집적단지 조성사업'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벤처 농업을 추구하기 위해 경북대와 안동대'상주대 농대를 통합해 '농업생명과학대학'을 만든다는 것이다.
경북대가 추진할 수 있는 통합 모형으로 금오공대, 대구교대와의 통합안도 있다.
구미공단에 위치한 금오공대와 IT관련 학과의 통합으로 정보통신대학을 탄생시킨다면 경쟁력있는 일류 클러스터 조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교수인력 상호 보완과 시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사범대와 교대간 통합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은 논의 수준에 불과하다.
지역대학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당장 답답할게 없다는 소규모 대학의 보신주의 타파와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 그리고 지역사회의 여론 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대 오영수 기획처장은 "대학 특성화가 탄력을 받으려면 우선 대학간 통합의 당위성과 목표성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경북대'안동대'상주대간 전체적인 통합 논의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대구권에 밀집된 사립대학도 백화점식 학과 개설과 유사학과 난립으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
노석균 영남대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은 "대학간 특성화와 구조개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큰 대학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며 "아직은 신입생 모집 걱정이 없는 상위권 대학의 안이한 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의 최고경영자인 총장이 특성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할 힘이 없거나 의지가 없는 것도 문제다.
경산권 대학들은 지난해 가을 대학간 컨소시엄 구성방안을 제기했었다.
사립대학간 M&A가 어려운 현실에서 경쟁력이 높은 대학과 학과의 연계운영으로 실질적인 대학 통폐합 효과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이 방안에 대해 대구가톨릭대와 대구대'대구한의대 총장이 모두 공감을 했으나 구체적인 논의로 진전시키지 못했다.
대구대 이재규 총장은 "대구가톨릭대의 의대'약대와 대구한의대의 한의'한방관련 학과, 대구대의 특수교육'사회복지 분야를 특성화해 학부와 학과를 빅딜하고 학생 수를 감축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울타리안에 여러 개의 대학이 공존하거나 1,2,3캠퍼스를 운영하는 외국 대학의 사례에서 보듯 구조개혁으로 인력과 시설을 통합 활용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남대 이재훈 교수(경영학부'경북테크노파크 부단장)는 "현재의 백화점식 체제로는 공멸할 게 뻔한데도 아직 목전에 위기가 닥치지 않아 통폐합 논의가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누리사업 등 특성화 분야에 대한 입체적인 집중지원으로 간접적인 구조개혁 효과라도 이끌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한의대의 황병태 총장은 "대학이 살아남을 길은 지역산업과 연계한 특성화를 전제로 한 구조조정"이라고 단언하며 "지역 대학이 공존하려면 대학간 학과 교환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한의대의 경우 한방화장품 관련학과를 특성화한 결과 신입생의 절반을 외지 학생들로 채운 것을 특성화의 성공사례로 꼽고 있다.
지역 산업과 연계한 소규모 대학의 특성화 추진 모델로는 영주 동양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대학의 '인삼 기술'마케팅'네트워킹 사업'을 추진이 그것. 한때 IT 특성화와 이공계 기술직 중심의 '공무원사관학교'를 표방했던 이 대학의 최성해 총장은 "지역 기반산업인 인삼의 특성화와 산업 클러스터 구축 시도가 산업자원부의 지역혁신특성화(RIC)사업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대다수 지역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특성화와 구조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조선해양공학 분야의 구조조정에 관한 논문을 제출한 울산대 조상래 교수는 "대학의 구조조정이나 특성화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자의 지속적인 지원과 구성원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극심한 신입생 모집난에 처한 전문대학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계호 경북과학대학장은 "1980년대에 공업'실업'보건계열 등으로 구분됐던 대학들이 인기학과 개설을 남발하면서 특성화의 경계선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지역 25개의 모든 전문대학에 IT계열 학과가 개설됐고 20여개 대학에 유아교육과가 있으며 16개 이상의 대학에 간호과와 관광'사회복지계열학과가 난립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전문대학의 미래에 족쇄가 되고 있다.
일본 교토대 경제학부 출신의 윤칠석 경북전략산업기획단 기획조정실장은 "우리보다 빨리 출산율 저하현상이 나타난 일본 사학들의 살아남기 전략은 처절할 정도"라며 "개혁하는 학교에는 수험생이 몰린다는 사실이 일본에서 이미 입증됐다"고 밝혔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Only one) 전략'. 이것은 최근 일본 사학들 사이에 나도는 유행어다.
'우리 대학외에는 없는 개성있는 교육이나 제도'를 도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생존을 위한 개혁은 이제 대학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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