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번째 독립영화 '길'로 돌아온 배창호 감독

영화감독 배창호(51)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고래사냥'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속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로 시작하는 노래가사를 흥얼거릴때면 실패를 모르는 그의 흥행사가 떠오른다.

'흑수선' 이후 2년이 훌쩍 지났다.

배창호 감독은 다시 저예산 독립영화 '길'을 들고 나타났다.

몇 곳의 촬영장에서 6개월 정도면 한편의 영화를 뚝딱 해치우는 최근 영화판도에 비하면 1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그의 영화는 지난한 여정이자 인고의 과정이다.

사비를 털고, 친지들의 주머니를 뒤져 제작과 감독을 겸하는 요즘 그의 영화인생은 그의 말대로 굳은 신념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그런 영화다.

#1년동안 전국 누비며 촬영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객들의 발걸음은 늘어나지 않았다.

독립영화에 대한 고집으로 '러브스토리(1996)', '정(1998)' 등을 잇따라 내놨지만 실패의 아픔만 곱씹었다.

그래서 독립영화를 잠시 접어두고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한 미스터리스릴러물 '흑수선(2001)'도 다를 바가 없었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이듬해 '적도의 꽃', 1984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리고 그 유명했던 '고래사냥'과 '깊고 푸른 밤' 등…. 만드는 영화마다 빅히트를 기록하며 '한국의 스필버그'로 불리었던 배창호 감독의 처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바뀌었을까.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감독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시대가 원하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하는 영화에 맞추기가 싫었지요."

1980년대 흥행사였던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1986년 '황진이'를 전환점으로 갈라선다.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과 '꿈(1991)'을 시작으로 자본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독립영화 정신은 이후 쭉 이어진 것.

#단 1명만 감동해도 만족

어느덧 50줄을 넘기면서 '내 영화'를 향한 고집은 더욱 굳어진다고 했다.

제작비 마련이 힘들어 어렵게 만들었던 '러브스토리', '정'과 같이 그의 17번째 작품인 '길'의 여정도 순탄치 않았다.

아니 앞으로가 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배급을 선뜻 응하는 곳이 없어 개봉시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고생고생하며 찍었는데 정작 스크린을 걸 데가 없군요."

상업성을 배제한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제 영화가 상업성이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상업성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가 중요하지요. 너무 자극적인 면만 치중한 요즘 영화들의 이미지를 상업성으로 보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요."

세상은 많이 변했다.

단관 영화관이 멀티플렉스로, 100만 관객이 1천만명으로 바뀐 시대. 그가 보는 요즘 한국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외형적인 성장은 분명히 좋은 현상이지요. 영화기술, 제작 및 배급시스템, 관객 수 등. 하지만 1천만이 보는 영화가 있으면 10만 아니 1명을 감동시키는 영화도 필요합니다.

다양성이란 측면이 아쉬워요." '산업'의 대세는 인정하면서도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영화 통해 고향 대구 알리고파

"1천만 관객시대가 열리는 등 영화계의 땅은 확실히 넓어졌습니다.

그 황무지를 어떻게 개간하느냐는 영화인들의 몫이지요. 10대와 20대 관객이 90%를 차지하는 현실은 분명 영화인들이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

대구 출신인 그는 고향의 모습을 영화에 많이 담는다고 했다.

"일찍 대구를 떠났지만 어릴 적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좋은 촬영장소를 많이 개발해 영화를 통해서나마 고향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차기작도 아프리카에 체류하면서 목도한 의사들 얘기를 다룬 독립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배창호 감독의 외고집은 멈출줄 모른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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