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이를 읽자,미래를 읽자-왜 책인가

책의 '향기' 모니터는 대신못해

신문, 책으로 대표되는 '종이'(활자출판)의 전성시대가 곧 막을 내릴 것이란 '종이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TV를 비롯한 영상매체나 인터넷이 신문, 책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란 게 종이 위기론의 요지다.

정말로 종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종이를 읽자, 미래를 읽자'를 통해 신문과 책의 현주소 및 가치와 경쟁력, 그리고 그 미래를 살펴본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 지난 500여년 동안 지식과 감동을 담고, 체험을 공유하는 '인류 최강의 도구'로 군림해온 '종이책'. 최근 인터넷, 영상매체로 대표되는 디지털 정보체계의 발달로 종이책의 몰락을 점치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종이책은 종말을 고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답은 "그 무엇도 종이책의 '매력'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종이책의 미래는 매우 밝다"로 집약되고 있다.

▨ 종이책을 외면하는 사람들

갈수록 불황의 늪에 빠져드는 우리 출판계를 보면 종이책의 종말을 예고하는 일부의 전망에 언뜻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2년 전에 비해 시장 규모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출판계의 아우성이 결코 엄살만은 아니다.

실례로 1994년 5천683곳이던 전국의 서점 수가 8년이 흐른 2002년에는 2천328곳으로 60% 가까이 줄었다.

우리 국민들의 여가생활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비중도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최근 국민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여가생활에서 책읽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7.2%로 텔레비전 시청(20.9%)과 인터넷 하기(7.8%)보다 낮았다.

또 여가생활에서 텔레비전, 비디오, 영화 등 영상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6.2%에 달한 반면 신문'잡지, 책, 만화 등 인쇄매체의 비중은 16.5%에 불과했다.

지난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사람'이 28%로 3년 전에 비해 5.8% 증가하는 등 책을 멀리하는 풍조가 갈수록 팽배하는 실정이다.

▨ 디지털 시대에 빛을 발하는 '종이의 매력'

이처럼 출판시장의 추락에다 디지털 정보체계의 발달로 종이의 몰락이 점쳐지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반대다.

오히려 종이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사진을 '언제라도 간단히 볼 수 있게' 종이사진으로 간직하려는 사람이 많다.

업계는 디지털사진 인화서비스 시장이 지난 해 3백50억원대에서 올해는 6백억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웹진사보를 발간했던 데이콤은 이제는 종이로 사보를 찍어내고 있다.

데이콤측은 "자기 업무에도 바빠 모니터로 사보를 보는 직원이 점점줄어 다시 종이에 인쇄한 사보를 찍어내는 쪽으로 바꿨다"며 "종이 사보를 재발간한 뒤 사보를 열독하는 직원이 다시 늘어났다"고 밝혔다.

"종이없는 사무실이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예언이 일부 수정돼야 한다는 사실을 데이콤의 사례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문들이 인터넷판에서 종이신문을 보는 것과 똑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아이브라우저'를 선보인 것도 종이의 매력에 빠져 있는 독자를 배려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위축될 것으로 보였던 종이수요도 되레 증가하고 있다.

한국제지공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종이 생산'소비량은 해마다 3~5%씩 늘어나고 있다.

'종이-일상의 놀라운 사건'의 저자 피에르마르크 드 비아지는 "종이없는 세상은 비참할 뿐이며 아직까지는 요원하다"고 설파했다.

▨ "인류는 영원히 책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정보의 가장 큰 폐단은 보고난 직후 곧 잊어버리는 정보의 '휘발성'이 아닐까. 이에 반해 종이책은 오랫동안 음미하고 자기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사람들을 도와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모니터 위에 떠 있는 문서정보가 종이의 '향기'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정보는 나의 것이 되기 힘들지만, 내가 읽은 책에 있는 정보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 나가는 도끼'(프란츠 카프카)가 돼주는 것이다.

책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행방'에서 21세기, 활자문화는 어디로 가는가를 천착한 일본 와코(和光)대학 츠노 카이타로 교수. 그는 "아무리 우수한 논고나 작품이라도 종이의 뒷받침 없이 디지털 정보로만 존재한다면 그 가치가 자리잡을 수 없다.

틀림없는 '종이 본위(paper standard)'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보는 측면에서도 종이책의 편리함은 디지털 문서를 훨씬 앞서고 있다.

노트북에 들어있는 전자파일을 누워 들여다보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그러나 종이책은 아무 데나 들고다니며 볼 수 있고, 여러 장을 펼쳐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정보를 모아둔 파일이 훼손되거나 사이트가 사라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장미의 이름'의 저자이며 기호학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의 진정한 문제는 과잉 정보로 인해 오히려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며 "종이책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존재'이기에 인류는 영원히 책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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