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상에는 복숭아를 놓지 않는다.
그 까닭은 이렇다.
중국 고대의 요 임금 시대, 하늘에 태양이 10개나 뜨는 변괴가 발생한다.
당대 최고의 궁사 예는 신출귀몰한 활 솜씨로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나라를 구한다.
예에겐 봉몽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봉몽은 그러나 스승의 활 솜씨를 시기했다.
어느날 예가 사냥길에서 돌아올 때였다.
봉몽은 길목에 숨어 있다가 복숭아 나무 몽둥이로 예를 때려 죽였다.
예는 죽어서 귀신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했다.
한국의 제사 풍습에서 복숭아를 쓰지 않는 것은 예의 이러한 비극적 신화가 투영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신화학자들은 예가 동이계 종족의 신이거나 군장(君長)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고구려 신화의 주몽도 예처럼 활쏘기의 명수였다.
중국의 신화인 예의 이야기는 이렇게 한반도 풍습에도 녹아들었다.
신화학자인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정재서 교수는 근저 '이야기 동양신화'를 통해 우리 문화의 원형에 나타난 동양 신화의 원류를 따라간다.
동양의 마음과 상상력을 읽어내기 위해 그는 해박한 지식과 사료를 꿰어 재담으로 엮어낸다.
*'인어아저씨'가 낯선 까닭은
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 제목 '왕의 귀환'처럼 신화가 돌아오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깔려 사라졌던 신들이, 망각의 지층 아래 봉인됐던 거인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들의 면면을 보면 금발에 파란눈을 한 서양신들이다.
동양의 신들도 많았을 텐데 다 어디로 갔을까.
저자는 동양 문화의 원형으로 녹아든 신들의 잠을 깨워 중심 무대에 세운다.
1만8천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거인, 사라져버린 슬픈 어머니 여와, 인간에게 농업을 가르쳐 준 소 머리 신 '염제'(신농), 영혼을 찾아떠난 주목왕의 모험 등 신비롭고 진기하며 때로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산해경이라는 중국 고서를 펼쳐보면 '저인'이라는 괴물이 나타난다.
상체는 사람이지만 하체는 물고기인 이 괴물은 인어임이 분명하다.
저인은 그러나 '인어아가씨'가 아니라, '인어아저씨'이다.
상체가 남자이기에 가릴 가슴도 없다.
인어아저씨는 매혹적인 서양 인어아가씨에 의해 버림받았다.
인어아저씨가 낯설고 우스운 것은 그만큼 우리들이 서양신화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방증이리라.
저자는 동양 신화와 한국 문화 원형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기 위해 상상력의 나래를 편다.
서대문 형무소, 소년원, 화장터가 서울의 서쪽에 있었던 까닭은 죽음을 상징하는 중국 서쪽의 여신(서왕모)을 상징하는 것이란다.
죽음을 의미하는 '골로 간다'는 의미는 한양의 서쪽에 있던 '고태골'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다.
고태골은 처형장이었다.
'골로 간다'는 '고태골로 간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이 늘씬한 미남, 풍만한 미녀로 묘사되는 것은 만물 중 인간이 으뜸이라는 서양인들의 사고가 배어 있다.
서양의 창세 신화에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동양인들의 심오한 우주관
반면 동양신화에서 신들은 대체로 흉측한 형상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인간에게 농업과 의술을 가르친 신농의 머리는 소이다.
동양의 신들이 괴물 형상인 것은 동양인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 자연에 가까운 동물을 인간보다 더 신성히 여겼기 때문이다.
서양신화에서 천지만물은 신에 의해 창조됐지만, 동양신화에서는 저절로 태어났다.
동양 신화는 혼돈에서 저절로 거인이 태어나고 다시 그 거인이 죽은 뒤 몸이 썩어 이 세상을 만드는 생태적 순환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연(自然)'이라는 이름에는 동양인들의 심오한 우주관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신화는 죽지 않는다.
잠복해 있다가 때가 되면 부활한다.
싸움 잘하기로는 중국의 숱한 영웅 중에서 동이계 종족의 치우(蚩尤)에 비길 만한 인물이 없다.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한 치우는 사이보그 인간 로보캅처럼 천하무적이었다.
비록 중국 고대의 신 황제(黃帝)와의 전투에서 패해 죽었지만, 치우가 지닌 불굴 투혼과 상징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서 '붉은 악마'로 되살아났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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