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 10분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황당한 장면들이 나열됐다.
레이스 달린 속옷만 달랑 걸친 몇몇 배우들이 벌써부터 손님을 맞기 위해 객석에 나와 있었다.
무대에서는 요염한 포즈의 여배우들이 유혹한다.
마치 진짜 카바레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팀의 내한 공연이라는 점과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 우리에게 친숙한 샘 멘데스가 연출을 했다는 점에서 공연 전부터 화제를 뿌렸던 뮤지컬 '캬바레'는 그렇게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막을 올렸다.
무대는 단일세트로 매우 소박하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실제 나이트클럽을 개조한 극장에서 공연됐던 점에 비하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장소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극장용인 이 작품이 3천석이 넘는 공연장에 올랐으니. 배우들과 멀찍이 떨어진 2, 3층에 앉은 관객들은 분위기에 휩쓸리는데 상당히 힘든 모습이었다.
대구공연 무대가 오페라하우스로 결정된 것은 분명 대구시민들에게는 다행인 셈이다.
이 작품이 전세계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뭘까. 경쾌한 춤과 노래, 해피엔딩의 가벼운 내용으로 구성된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쇼' 위주의 비슷비슷한 기존 뮤지컬에 식상했던 관객이라면 이번 공연이 던지는 진지한 메시지의 감흥은 잊지 못할 선물이다.
여기에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무대 2층에 자리잡은 오케스트라석에서 바이올린과 트럼펫, 색소폰 등을 직접 연주한 뒤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생생한 무대는 그런 허전함을 비워내기에 충분했다.
'캬바레'라는 제목만 보고, 또 속옷 차림의 배우들이 등장한다고 야한 작품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캬바레'의 주제는 사랑이야기도 섹스이야기도 아니다.
대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차 의지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받게된다.
또 해피엔딩과 거리가 먼 충격적인 라스트신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공연장을 나서게 만든다.
이 작품을 진지하게 봐야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무거운 주제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재미있는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탄탄한 노래 실력을 통해 울려 퍼지는 '돈텔마마', '캬바레', '빌코멘' 등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는 흥겨움을 더했다.
'캬바레' 대구공연은 20일부터 25일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8시, 일요일 오후 3시.7시. 입장권은 6종류로 4만~12만원. 문의 053)626-1980.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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