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어느 출판기념식

시내 한 교회 예배당에서 조촐한 출판 기념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기념식장에는 더위를 식혀줄 그 흔한 얼음 장식도 없었고, 손님들을 맞을 음악도 음료를 준비한 테이블도 없이 오늘의 행사를 알리는 썰렁하기까지 한 현수막만 걸려 있었다.

초대한 손님들 보다 준비하는 자원봉사자가 더 많은 행사장. 서둘러 움직이던 도우미들은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역, 그리고 근처의 무료 급식소에서 기다렸다가 초대 손님들을 식장으로 모셨는데 마치 연로하신 노인을 모시는 것처럼, 걸음마 아이를 이끄는 것처럼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팔짱을 끼고 짝을 지어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점자 홈페이지 주소록 출판 기념회'. 사실 대구 점자도서관으로부터 행사가 있으니 진행을 부탁한다는 연락에 참석하긴 했지만, 단상의 현수막만으로는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다.

'점자책이나 오디오북 출판 기념식도 아니고, 왜 하필 인터넷에 널려있는 홈페이지의 주소를 책으로 만들어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일까?…'

두꺼운 백지에 올록볼록 찍혀 있는 점자. 대낮같이 환한 형광등 아래에서도 알아볼 수 없었던 두 권 가득 찍혀있는 점자들이 그들을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게 하는 생존을 위한 동아줄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들은 2년도 넘는 시간을 투자해서, 흰 지팡이에 의지해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공공기관과 학교, 병원, 언론사, 그리고 주요 기업 등 4천여 곳의 인터넷사이트의 주소를 모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생활의 길라잡이를 펴낸 것이다.

그들은 오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에 그들 스스로를 격려하는, 시각장애인의 웰빙을 위한 기념식을 마련했다.

힘겨워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분명 힘겨운 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친구의 손을 내밀어 줘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부족함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는 한 연사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본다.

도성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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